서양 고전을 관통하는 21개 핵심 사유
(김동훈 지음, 민음사, 2017)
3부 생각하라
11.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확신한다. 고로 살아 있다
나는 ~한다. 고로 존재한다.
12.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
냉철한 물음이 필요하다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라는 명언이 중요한 이유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근원'에 대한 물음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당시 사람들이 경험했던 자연은 온통 의문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번개 맞아 죽은 나무를 보면, 그 번개가 발생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분노한 제우스가 창을 던졌다는 식으로 이해했다. 신화적 이해가 자연현상의 궁금증을 푸는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하지만 탈레스는 이런 신화적인 설명이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라 여기고, 자연현상에 대한 '밑'과 '끝'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여기서 밑과 끝에 해당하는 희랍어가 바로 '아르케', 즉 근원이다.
탈레스는근원-물음을 최초로 제기함으로써 이후 철학자들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추상화의 길을 열어 놓았고, 신화에서 철학(과학)으로의 전환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 사실이 탈레스가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기에 충분한 이유가 된다.
13 유레카
새로운 발견을 위한 나만의 팔림세스트
우리에게 '발견'이란 무엇일까? 팔림세스트를 통한 유레카를 나 자신에게 적용시켜 보자. 하나의 고착된 생각의 양피지 위에서 희미해진 과거의 흔적이 갑자기 크고 선명하게 보이는 현상이 바로 유레카다. 그럼 우리의 희미해진 생각의 흔적은 어디에 있는가? 그 흔적을 프로이트라면 아마 꿈이라 할 것이고, 바슐라르라면 기억이라 할 것이다. 뭐든 좋다. 그럼 질문을 바꿔 보자. 어떤 희미해진 흔적이 꿈에서건 일상에셔건 보이는가? 어떤 망각된 흔적이 남아 있는가? 스치듯 지나가는 이런저런 흔적을 엮어 더 큰 사고 틀을 완성한다면 우리도 아르키메데스처럼 외칠 수 있다. 유레카! 유레카!
14 귀게스의 반지
권력의 유혹을 극복하는 기적
절대 권력이 왜 위험한가? 들키지 않고 통치할 수 있는 마법의 반지를 독점했기 때문이다. 권력자들은 반지를 끼고 불의한 일을 투명인간처럼 숨어서 일삼기 일쑤고, 인정받을 만한 명예로운 일은 자신의 이름으로 드러낼 것이다. 그들은 부정직한 일을 감행하면서도 칭찬 들을 일만 보여 줄 수 있는 힘이 있다.
사람들은 대놓고는 못 하지만 얼굴이 보이지 않으면 하는 일이 있다. 익명성은 사람에게 용기라는 마법에 빠지게 하는데, 그 용기는 몰염치가 된다. '몰래 하기'의 유혹에 쉽게 빠지는 것은 자신의 몸과 얼굴을 볼 수 없다. 내가 없는 텅 빈 거울에 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래서 체면이 있을 때 우리는 몰염치를 탈출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보여 줄 나의 모습, 즉 체면이 있을 때, 그러니까 수치심을 아는 상태인 염치가 있을 때 나는 '나'다울 수 있는 것이다.
15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다
흉내 내기에서 벗어나 본받기를 실천하라
4부 새로워라
16 시간은 돈이다
시간의 가역을 꿈꿔라
어느 날, 지루하리만치 끔찍한 크로노스의 아가리에서 역행을 경험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열 살 때 어느 후원자가 그녀에게 던진 한마디 때문이었다. "사랑한다" 그 순간 그녀에게 크로노스의 순환은 잠시 역행을 한다. 그리고 달라진 인생의 순환이 일어난다. 남들처럼 가정을 꾸미고 예쁜 딸 둘을 낳는다. 그런대로 시간의 순환 속에 묻힐 즈음, 이제는 자신이 직접 시간의 혁명을 시도한다. 자신을 버린 엄마를 향해 이런 고백을 한 것이다.
나를 가슴에 품고 얼마나 당신은 아프고 무서웠습니까? 아기를 낳았지만 낳았다고 자랑도 못 하고 손가락질받고 얼마나 아픈 눈물을 삼키셨습니까? 태어나자마자 당신에게 아픔을 드려 죄송합니다. 이런 저를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시간을 가역할 수 있다. 오늘도 나는 나이를 먹는다. 시간을 집어삼킨다. 시간의 가역을 꿈꾸며, 가역의 순간을 많이 만들자. 어차피 시간은 또다시 순환할 테니, 내 운명을 농단하려는 시간의 신은 또 찾아올 테니까. 올 테면 오라고, 나는 시간을 혁명한다.
17 금도끼 은도끼
'솟아오름'의 기젹은 선택에 달려 있다
불의란 거짓말을 하고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것, 즉 몰염치다. 그 대가는 참으로 가혹했으니, 어떠한 보상도 없었다. 몰염치에는 손해만 있을 뿐이다. 몰염치는 거짓말로 꾀부리다가 가진 것마저 사라지게 만들 뿐이다. 그리고 그 몰염치는 거짓을 반복하게 만드는 원흉이 된다.
선택이라는 관문
인생의 교훈, 물에 빠진 도끼날을 건져 올리는 기적이 없으면 우리 인생은 여기서 멈추어야 한다. 그러니 겸손히 빈손으로 나아가 솟아오르는 도끼가 나의 도끼인지부터 살피자. 잃었을 때 아픈 줄 아는 마음이 있는지 챙겨 보자. 내가 잃은 것이 무엇인지부터 정직하게 말하자. 그건 내것이 아니라고, 나는 그 권한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고, 나의 것만 하락해도 감사한다고, 실패에도 불구하고 솟아나는 순간은 항상 반복된다. 일부러 거짓 도끼질만 안 하는 이상 그렇다.
18 낙수가 바위를 뚫는다
모진 삶 속에서 꽃핀 오비디우스의 변신
낙수를 능동적인 모진 삶으로 여긴 오비디우스는 변신한다. 그는 내 편이 없는 유배지에서 더 강해졌다. 지치지 않고 내가 그들의 판이 되어 줌으로써, 그때 존엄이 된다. 그래서 낙수는 바위를 뚫는다.
19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설움의 소리가 울려 퍼져 상처가 아무는 곳
요정 쉬링크스에게 갈대는 '원하지 않는 사랑'에 대한 거절이 부른 비극을 품고 있고, 한편으로 판에게는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코끝 찡하게 치밀어 오르는 그리움을 담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둘에게 모두 갈대는 위로가 된다.
갈대는 한숨을 싣고: 하인의 고통
프뤼기아의 왕 미다스의 귀가 당나귀 귀가 된 이유는 판과 아폴론의 음악 경연에서 미다스가 갈대 피리를 연주한 판의 편을 들다가 아폴론의 미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미다스 왕의 당나귀 귀는 오래지 않아 이발사에게 발각된다. 그 이발사는 누구를 만나도 멀뚱히 바라볼 뿐 벙어리 냉가슴을 앓아야 했다. 함지박처럼 입만 뻐끔대다 어쩔 수 없었던지, 그는 외딴 곳 땅에 구덩이를 파고 작은 소리로 그 비밀을 털어놓는다. 속은 후련해졌지만, 혹시라도 그 말이 새어 나갈까 가슴 졸이며 다시 흙으로 묻어 두었다. 그 곳에서 자라난 갈대는 바람에 흔들려 서로 스칠 때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말을 토해 냈다.
갈라테이아의 사랑을 받은 아키스는 외눈박이 거인에게 질투를 받아 바위에 맞아 죽지만, 오히려 강물의 신이 되어 갈대를 달고 되살아난다. 아키스를 상징하는 갈대는 질투와 모함으로 궁지에 몰린 현대의 아키스들에게 하나의 희망이 된다.
갈대숲은 우리를 위로해 주고 응어리를 풀어준다.
20. 사랑받기 원한다면 사랑하라
사랑이라는 열정의 끝점은 자유
우리는 때로 자신과 경계가 맞닿아 있는 '타자'와의 관계에서 그들로부터 사랑받기를 원하는지, 아니면 사랑하기를 원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한다.
그렇다면 세네카가 사랑받기에 앞서 사랑하기를 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랑할 때 불안하지 않기 때문이다.
21. 늑대가 나타났다
내 안의 야수성을 긍정하라
인간이나 늑대나 모두 사랑이 넘치고 씩씩하고 용감하다. 이런 생명력은 그래서 신비하고 매력적이다. 하지만 이런 생명력은 탐욕이라고, 또는 교활하다고 낙인찍혀 말살당하거나 길들여지기 십상이다. 적어도 문명사회에서 권력이 지배욕으로 바뀌면서는 그렇다. 그 권력 아래에서는 본능적으로 타고난 야수성을 포기하고, 사회와 관습이 만든 거세된 내시처럼 살라고 요구당한다.
누군가의 마음에 들기 위해, 좌절하고 총명함을 버리고 목소리를 낮추고 실행을 유보하며 우리 인생길 반 고비 넘겼을 때, 그리고 또 그렇게 한평생을 살았을 때 과연 최종적으로 남는 건 무엇일까? 억누른 야수성은 신경증, 도착증, 정신분열로 나타난다지만, 표출된 연금술의 보석과 같은 야수성은 새로운 탄생을 가능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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