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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방

별별 명언 -1/2

by 행복배터리 2023.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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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고전을 관통하는 21개 핵심 사유
(김동훈 지음, 민음사, 2017)

1부 성숙하라


1. 너 자신을 알라

사나운 괴물인가, 온유한 피조물인가


희랍 신화에서 튀폰은 서로 다른 100개의 얼굴과 뱀의 꼬리를 가지고 있다. 여러 개의 겹으로 된 얼굴이 튀폰을 더 사납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여러 겹의 얼굴, 즉 다중 인격을 지니고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희랍 신화에서 튀폰은 제우스의 벼락을 맞아 아이트나 산에 내동댕이쳐지고, 거기서 튀폰이 처절한 몸부림을 쳐서 화산 활동이 이루어졌다고 전해진다. 여러 겹의 이미지, 다중 환상, 다중 인격의 말로가 그와 같다고 무섭게 경고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한 겹의 이미지를 꿰뚫어 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 겹의 확실한 이미지를 과연 볼 수 있을까?  ....
소크라테스는 사람이 태어나면서 각자의 몫이 있고, 응당 그 몫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이 자신의 몫에 집중하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다른 사람의 몫을 곁눈질하고 집적대다 여러 겹의 이미지에 낚여서는 내 운명의 몫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몫을 넘어서는 것이 곧 '오만'이다. 소크라테스는 '오만하지 않은 명'을 지닌 존재임을 자각하라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너 자신을 알라"는 의미가 있다.

2. 카르페 디엠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


도망치듯 사라지며 죽음으로 치닫는 세월 속에서
장미꽃 봉오리를 모을 수 있는 한철을 붙잡으라고 당부한다.

"카르페 디엠"
내 가슴에는 어떤 포도주가 잘 걸러졌는지
또 어떤 장미꽃 봉오리가 모아지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붉은 홍시가 영글었는지 자문해 보자

3. 백조의 노래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백조는 숨을 거두는 순간 찬란하게 노래하고 생을 마친다고 한다.... 백조의 노래가 아름다운 이유는 백조가 죽을 날을 기뻐하기 때문이란다.

자네 자신들을 잘 돌본다면
나와 내게 속한 자들, 그리고 자네들 자신에게
자네가 할 일을 다한 것이네. - 소크라테스-


나는 나의 그 순간을 어떻게 맞이할지, 마지막 호흡이 목을 넘어 나의 폐부에 간신히 스러질 때를 생각하면 사뭇 떨린다. 내게 주어진 사명을 위해 나름 적은 손해 감수하며 살았더라고 흐뭇하게 '백조의 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을지는, 나도 이 세상 소풍 잘 마치고 왔다고, 그 소풍 갔던 세상 아름다웠다고 할 수 있을는지, 나지막히 나의 '백조의 노래'를 준비해 본다.

4. 밑 빠진 독

욕망의 무한 루프를 끊어 버려라


• 밑 빠진 독 - 육체 - 만족 없음 - 절제 없음 - 설득당하여 변덕
• 밑 빠진 체 - 영혼 - 생각 없음 - 유지 못 하고 망각

욕망은 그 동안의 대상에 대한 지조 없이 새로운 대상으로 향하게 된다. 또한 플라톤은 대상에 대하여 지조 없는 상태를 '망각'이라고 한다. 그 결과 우리의 육체는 무절제한 욕망에 한없이 미끄러지게 된다.

무심코 오늘 산 예쁜 옷이 내 옷장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년 전에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다소곳이 내 손길을 기다리는 와이셔츠... 욕망하던 대상이 채워지고 나서도, 그 대상을 망각하고 또다시 새로운 대상을 찾는 욕망의 무한 루프에 나도 걸려 있었다. 밑 빠진 나, 얼(희랍어의 영혼) 빠진 나를 개혁하자. 그 무저갱 속에서 가속화되는 욕망의 과부하를 이제라도 끊어 버리자. 밑 빠진 독을 처단하라!

5. 주사위는 던져졌다

'위험의 차원'으로 들어가라


우리는 내 운명의 주사위 숫자가 좋기만을 바란다. 하지만 부림절을 지키는 히브리인들은 인생이 팔자에 묶이지 않고 그 팔자의 숫자가 주는 의미를 역전시킬 수 있다고 되새긴다. 운명에 대해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하는가?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내 인생은 끝났다고 절망할 것인가? 결코 늦지 않았다. "죽으면 죽으리라"의 또 다른 패가 부림절의 '인생 역전'을 만들기 때문이다.

2부 함께하라


6. 시작이 반이다.

시작 단계에서 '불찰'이 없게 하라


이유 없이 입게 되는 상처를 불운이라 한다. 한편 악의는 없지만 이유가 있어서 입게 되는 손해를 불찰이라 한다. 그러니까 시작에 상처의 원인이 있으면 불찰이고, 시작에 상처의 원인이 없으면 불운이다. 또 한편 의도하지 않았어도(상처 입힐 것을) 알고 있을 때는 불의인데, 예를 들어 분노나 피할 수 없는 본성적 격정에 굴복해서 보게 되는 상처 말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세상의 시작은 충분히 아름답다
결국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한 것은 '불찰 없는 시작'을 하라는 것이다. 불찰이 상처의 원인을 제공하게 되니, 불찰 없이 일을 시작하려면 상처의 이유를 살피는 것, 더 들어가 '자신의 몫'을 아는 것이다.

7.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카프카의 프로메테우스처럼


우리의 간은 계속 자라고 있다. 비록 상처 속에서 우리가 망각했다 해도.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생명 현상을 깨닫고 자신과 타인을 위한 나의 당위를 찾는 것이다. 그때 예술은, 그리고 기술은 영원할 것이다. 비록 이 일을 위한 결단은 험난할지라도.

8. 인생은 연극이다.

타인과 함께하는 '미제리코르디아'


사람은 자신이 슬픈 일을 겪는 것은 원치 않으면서도 비극을 보면서는 슬퍼하길 원합니다. 무엇 때문인가요? 관객은 비극을 통해 슬퍼하길 원하면서 바로 그 슬픔이 자신의 쾌감이 됩니다. 이것은 서러워하는 광기가 아니고 무엇인지요? 그런 감정에 의해 서러움이 클수록 그 비극은 더욱 감동을 자아냅니다. 그렇지만 혼자 겪게 되는 고통을  '미제리아'라 말하고, 타인과 함께 겪게 되는 고통을 '미제리코르디아'라 말합니다.
- 아우그스티누스 [고백록]에서
(미제리아-설움, 미제리코르디아-서럽게 여김)

어쩌면 우리는 연극보다 더 연극 같은 삶을 산다. 간혹 가슴 뛰는 사랑을 찾아 그 사랑에 빠지는 인생 연극을 한다. 그리고 불 같은 사랑이 식으면 또 다른 사랑 찾기를 반복한다. 한사코 젊은 때나 한다는 사랑 타령이다. 연거푸 그는 그런 사랑에 빠졌다가 또 금세 싫증이 나는가 싶더니, 스스로 자신을 철문 닫힌 침대에 던져 넣는다. 그러고는 나이가 찼다고 핑계를 댄다. 얼굴에는 미소도 간혹 보이지만 더 이상 진심이 아니다. 자신의 설움도 애써 외면하고 함께하는 자들을 서러워할 줄도 모르고 침대에 몸을 뉘일 뿐이다. 이제 당신은 어느덧 같은 대사만 읊조린다. "원래 배역은 이게 아니었어..."
현주소와 배역의 간극, 나의 작은 방을 볼 수 있는 비결은 간단한 데 있다. 자신을 서러워할 줄 알고, 상대를 서러워할 줄 알며, 그런 나를 서럽게 여기는 관객이 있다는 연극적인 삶의 자세, 인생이 연극임을 알고 나니 나의 작은 배역도 멋진 것 같다.


9. 개 같은 인생

왕과 거지 모두에게 평등한 세상


알렉산드로스와 디오게네스가 처음 만난 일화가 있다. 누구나 그렇듯 서로를 소개한다.
"나는 대왕 알렉산드로스다."
"나도 견공 디오게네스다."
-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희랍 철인 열전> 6권

이 말에 알렉산드로스가 "조금은 걱정된 눈빛으로" 다시 묻는다. "어찌 그렇게 불리는가?" 디오게네스에게 너와 내가 모두 개(와) 같은 이유는 자신의 득실에 따라 아부, 불평, 공격을 하기 때문이다. "받으면 꼬리 흔들고(아부하고), 못 받으면 짖고(불평하고), 싫으면 이빨을 드러내지.(공격한다) -  <희랍 철인 열전> 6권
그러자 알렉산드로스는 "조금은 미안한 웃음"을 짓는다. 개(와) 같은 득실에 따른 행동은 제왕이나 거지, 심지어 개에게도 차이 없이 나타난다. 디오게네스는 좀 과격한 '만인 평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10. 세상은 아름답다

아름다움은 세상의 어울림에서 온다

음악의 어울림이 현의 길이에 따른 비율이듯, 시각의 비례 관계, 일종의 황금비 같은 것이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청각에서는 어울림 '하르모니아'가 아름다움을 체험하게 한다면, 시각에서는 비례 '쉼메트리아'가 아름다움을 감상케 한다. 그래서 시각적 비례 개념인 쉼메트리아가 비투르비우스의 건축 이론에서 중요성을 띠게 된 것이다.

what  a wonderful world!
이 노래는 암스토롱이 세상을 얼마나 밝게 보았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자신의 아픔을 감내하며 항상 밝은 자세로 하루하루 살아왔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한 인간으로서 마땅히 존경받을 만하다. 막장과도 같은 삶에서 그가 세상을 아름답다고 한 이유는 그도 세상 속에서 어울림의 신비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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