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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방

생각의 속임수 - 글을 열며 나는 누구인가?

by 행복배터리 2021.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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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택영, 글항아리, 2018)

저자가 했듯이 영화 [미션]에 나오는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들으면서 저자와 호흡을 같이 해 봅니다.

글을 열며 나는 누구인가?

가장 지혜로운 그가 짐승만도 못한 죄인이었다니, 지식은 오해와 한 몸이었고, 질서는 파괴의 아들이었으며, 오이디푸스의 명석한 판단은 관능에 의해 끌려갔던 것이다.

언제나 베일 뒤에 짐승 말곤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면 결혼생활은 즐겁다. 직장이나 사회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예술작품이 된다. 그러므로 첫사랑이든 마지막 사랑이든 사랑의 환상과 아픔이란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감춘 베일의 거부하기 어려운 절대적 힘에서 온다. 그 힘은 나를 살아가게 하는 숭고한 목적이 되기도 하며 때로는 자신을 초라하게 만드는 증오의 원천이 된다. 사랑은 숭고한 짐승이다. 보이는 것 뒤에 숨은 보이지 않는 것의 절대적인 힘, 아는 것 뒤에 숨은 모르는 것의 힘을 경험하기에 나는 겸손해진다. 사랑은, 생각하지 않는 그곳에서 내가 생각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미적 형식으로서 생각의 속임수를 잘 드러낸다.

능숙한 손잡이가 칼날을 세우지 않듯이 공간을 보는 사람은 생각의 속임수를 알기에 분노와 두려움의 칼날을 세우지 않는다.

모두가 외면하고 싫어했던 못생긴 캐릭터인 슬픔은 내게 얼마나 소중한가. 슬픔 없이는 결코 기쁨도 없는데 나는 왜 슬픔을 외면하려 하는가. 슬픔은 '슬픔 아닌 것'으로 이뤄지고 기쁨은 '기쁨 아닌 것'으로 이뤄지니 나는 긍정적 감흥을 위해 부정적 감흥을 섬겨야 한다. 사실 모든 경기의 기쁨도 기쁨 아닌 것들로 이루어진다. 골대에 공이 들어가기 전에 얼마나 많은 실수와 장애물을 헤쳐나가야 했던가. 온갖 장애물을 이겨내고 아슬아슬하게 넣은 한 골이 승패를 좌우할 때 관중은 자지러진다. 감동의 극치를 맛보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 세상을 놀라게 한 저술가는 흔히 이상한 스캔들에 휘말려 한동안 힘든 시기를 보내곤 한다. 재능의 과시는 매혹적이지만 그만큼 위험하기도 하다.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돈다고 말했던 갈릴레이처럼 정치적으로 위험한 것만이 아니다. 과시는 선망을 부르기 때문이다. 선망은 흠모이고 응시다. 부러움 속에는 시기심이 깃들어 있다. 내가 너처럼 높이 뜰 수 없다면 나와 동등하게 끌어내릴 수는 있으리라.

속임수는 내 삶의 동반자

나는 사랑하던 연인이 떠나면 감사하고 새로운 연인이 오면 또 감사한다.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으면 마음이 평탄하고 늘 감사하는 마음이 된다. 내 생각이 객관적인 판단이 아니라 내 경험들의 집합소에서 나온 느낌이라면 집착할수록 나는 더 크게 속는 것이다.

언제나 고독하고, 착각하며, 후회하고, 집착하는 나는 껍데기다. 껍데기는 가라. 아니다. 껍데기는 꼭 필요하다. 알맹이를 잘 보관하여 때마다 꺼내 써야 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찌하여 이런 또 다른 내가 존재하는가? 그를 어떻게 대접해야 편안하고 공감하면서 즐겁게 살 수 있을까? 속임수의 정체를 알면 그는 내 삶의 멋진 동반자가 될 수 있다.

이 책은 프로이트와 윌리엄 제임스의 심리학에 바탕을 두고, 최근의 뇌과학 연구도 참조하면서 속임수를 모르는 이유, 알아야 하는 이유, 그리고 그것의 긍정적 힘을 모색한다. 속임수는 창조력의 근원이고 그 이유를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것이 힘든 삶을 조금 더 쉽게, 덜 후회하며 살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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