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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방

생각의 속임수 - 제1장. 나는 왜 고독한가

by 행복배터리 2021.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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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방] - 생각의 속임수 - 글을 열며 나는 누구인가?

(권택영, 글항아리, 2018)

제1장. 나는 왜 고독한가

고독은 관계 속에서 일어난다.

경험이 저장된 뉴런들은 한 인간의 기억과 판단과 행동을 만들어내는 문서 보관소였다.

고독은 타인과의 경험을 저장하는 내 속의 '나 아닌 어떤 것'에서 나오며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느끼게 된다. 고독은 순수 의식의 산물이 아니라 의식과 기억의 흔적들, 혹은 의식과 감각(몸)의 관계 속에서 태어난다.

자의식이란 무엇인가. 나는 생각하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또 다른 나를' 품기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의식의 자리에 자의식이 들어서면서 오직 인간만이 '나'라는 개체 의식을 갖게 되고 이것은 고독의 근원이 된다. 고독은 자의식이라는 진화의 선물이었다.

중독증은 오랜 기간 반복해왔기에 몸에 새겨진 습관이다. 의식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아무리 결심해도 사흘을 넘기지 못할 뿐 아니라 술이나 담배를 끊겠다고 결심해도 큰 병에 걸리기 전에는 사흘을 넘기기 쉽지 않다. 그래서 작심삼일이란 옛말도 있다. 중독증은 의식적인 결심으로는 안 되고 적어도 4, 5개월 이상 대치할 다른 습관을 반복해야 한다.

치명적이고 강제적이며 물리적인 구속력이 없다면 모든 의지와 결심은 작심삼일로 끝난다.

단편 <대성당>은 세상과 타인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면 삶은 순간마다 배움으로 가득 찬 풍성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단절과 고독 속에 갇힌 그는 술과 텔레비전과 마리화나로 자신을 잊으려 했다. 반면 장님은 다만 눈으로 보지 못할 뿐 몸으로 볼 수 있고 그의 마음은 열려 있었다. 매 순간마다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장님에 비해 주인공은 그저 자신을 잊으려 하고 그럴수록 더 고독해진다. 그의 자의식은 늘 그를 위협하며 그럴수록 두렵고 움츠러들면서 방어벽을 굳게 쌓는다. 타인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내 속의 또 다른 나를 받아들이는 관용을 의미한다. 자의식이 전혀 없으면 양심에 털이 나는 것이고 지나치면 고둑의 성에 갇히고 만다. 자의식은 세상에서 나는 홀로라는 개인화이고 동시에 타인과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사회화이기 때문이다. 이런 양면성 때문에 너무 어울려서도 안 되고, 너무 안 어울려서도 안 된다. 너무 어울리다 보면 세상이 너를 삼키고 너무 안 어울리면 술이 너를 삼킨다.

뇌의 하부가 상부보다 더 강하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감각을 억압하면 생각이 맑아지고 판단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각이 끝없이 지연된다. 영혼의 맑음을 위해 악마의 몸을 억압하라는 옛말은 맞지 않는다. 언어와 생각 이전에 감각과 느낌이 있다.

억지로 고독만 제거하려 들면 반대로 고독이 나를 사로잡는다. 그냥 고독이라는 아지랑이 사이를 묵묵히 걸어가면 된다. 걷다보면 나보다 더 고독한 바틀비도 만나고 나와 비슷한 애러비 시장의 소년도 만난다. 그리고 세상에서 외로운 사람은 나만이 아님을 깨닫는다. 마처를 보면서 절대로 내 미래의 모습이 저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느낀다. 연인의 무덤 위에 얼굴을 파묻은 마처의 후회와 고립과 아픔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두려움 없이 열정적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삶의 순간순간을 낭비하지 않고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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