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와 함께 걷는 인생산책
휘몰아치는 사회와 관계의 격량으로 삶의 중심이 흔들릴 때
(이라야 지음, 알토북스, 2024)
제3장 자신을 위하여
새장을 벗어나 창공을 향한 자유의 날개짓
[자유는 스스로 자신을 자유의 몸으로 이끌어 나아갈 만한 사람에게 깃든다]
자유론의 아버지인 존 스튜어트 밀 또한 "남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표현과 사생활의 자유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한 자유는 대중의 여론보다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자기 행복을 위한 '자유'의 결정이지만 개인이 사회에 속한다는 진리까지 묵과해서는 안 된다.
실수도, 실패 앞에서도 서슴지 않는 당찬 발걸음
[한 가지 뜻을 세우고 그 길로 가라. 잘못도 있으리라. 실패도 있으리라. 그러나 다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라. 반드시 빛이 그대를 맞이할 것이다]
진정으로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가고 있는지, 이 길의 끝에 이르렀을 때 자신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위해 자신은 열정을 다하고 있는지 스스로 묻고 대답해야 한다.
나를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신을 벌레로 만드는 사람은 나중에 사람들이 밟아도 불평할 수 없다]
일하면서 성취감이나 보람을 느껴보지 못하고 오로지 성과, 돈, 명예만을 추구한 나머지 진정한 삶의 가치를 얻지 못한 것이다. 성실히 노력하고 애써 가족을 부양했음에도 결국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잃어버렸다. 가족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지 못하고 생계를 책임지는 수단으로 이용되었을 뿐이다.
그의 강한 책임감은 스스로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도록 밀어붙였다. 어떻게 하면 더 인간답게 살 수 있을지 고민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자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노라고 항변하겠지만 그것이 결국 자신을 파멸로 몰고 가는 길이었음을 몰랐다. 그 결과는 어떤가. 자신의 희생으로 먹고살았던 가족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가족에 의해 죽음에 이르는 안타까운 결과를 맞았다.
심성은 자기 마음대로 기를 수 있는 화초가 아니다.
[동물에게 잔인한 사람은 사람을 대할 때도 강퍅해진다. 동물을 대하는 태도로 사람의 마음을 판단할 수 있다]
약자를 존중할 줄 모르고 그들은 고통을 외면한다.
'해야만 하는 일'은 곧 내가 반드시 '할 수 있는 일'
[나는 항상 내가 해야 할 일은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할 때 보람과 행복이 깃든다.
소소한 감사를 잊는 행위가 곧 사악함이다.
[배은망덕은 사악함의 본질이다]
당신에게 '당연히 주어진 것'은 하나도 없다. 누군가의 피와 땀이 섞인 결정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현재 누리고 있는 모든 것, 꿈꾸는 가능성까지 감사하게 된다. 가장 가까운 주변 부모나 가족에게부터 배은망덕하지 말자. 사악함은 아주 강력한 범죄를 저지른 죄인에게 붙여지는 형용사가 아니다.
논리 있는 주장은 콩을 팥으로 만들 수 있다
[모든 지식은 감각에서 시작하여 이성으로 진행하고 이성으로 끝난다. 이성보다 더 높은 것은 없다.]
만약 누군가 자신을 비판하면 차분하게 듣지 못하고 이성을 잃게 된다. 무엇이 문제인지, 어떤 점을 지적하고 있는지, 자신의 사고가 논리나 이치에 잘 부합하는지 점검해보지 않고, 감각의 판단에 자기감성과 이성을 맡긴 채 즉각 반응한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아이의 반응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환호하고 자신이 불리하면 화를 낸다. 이러한 감정적 대처는 '나는 단순한 사람'이라고 광고하는 꼴이다.
자기만의 감각을 활용한 이성적 사고가 필요하다. 그것이 다른 사람과 자신이 차별될 수 있는 지점이다.
수천년이 지나도 굳건히 건재할 권선징악의 윤리
[실천 이성의 유일한 대상은 선과 악의 대상이다]
명예를 얻을 수 있다면 흔들리는 갈대가 되지 마라
[살아있는 동안 행복하게 살 필요는 없지만 사는 동안 명예롭게 살 필요는 있다]
행복이라는 참 묘해서 개인마다 느끼는 척도나 조건, 가치가 모두 다르다. 누군가는 '돈'에 두기도 하고, 누구는 '즐기는 여유'에 두기도 하며, 누구는 '건강'에 또 어떤 이는 '힘'에 두기도 한다. 사람미다 다르기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자신의 위치와 상황에 맞춰 정한 행복의 척도일 뿐이니 그것을 당신에게 적용할 이유가 없다.
'명예로움'은 자신이 이룬 가치의 실현에서 나온다. 작든 크든, 대단하든, 평범하고 일상적이든, 자신감과 뿌듯함을 동반한 당당함이다. 아이가 색종이로 만든 집은 어른이 보기에는 보잘 것 없고 조잡하지만 뿌듯한 맘으로 자랑하는 얼굴을 보라. 세상 누구도 가지지 못한 자부심이 깃들어 있다.
행복할 방법을 찾는다면 손에 책을 들어라
[지식은 인간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가장 중요한 도구이다]
'지식=공부'의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식은 어떤 대상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다. 정보에 사고가 덧입혀져 얻은 하나의 성과로 여기에는 단편적인 사실과 경험적 의식이나 자각이 뒷받침된다. 이를 바탕으로 자기 가치관이나 삶의 철학을 가질 수 있다.
누군가 며칠 굶어 배가 고프다는 것을 알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빵을 건넬 수 있다. 이것은 단순한 동정이 아니다. 배고픈 사람에게는 영양분이 공급되지 않으면 기아에 이르고 사망할 수 있다는 이론적 '정보'와 배가 고팠던 경험이 융합하여 만들어낸 지식이다. 이 지식이 자기 행동을 이끌어 배고픈 사람을 돕게 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지식이며 칸트가 말하는 행복을 증진시키는 도구이다.
'무엇으로 어떻게 행복해질까' 를 고민하고 있다면 당장 지식을 충전하라. 당신은 이미 많은 정보를 가졌다. 이를 경험이나 사고로 활성화시켜 행복의 충전량을 높이자. 지금보다 더 환하게 웃을 수 있는 비결이다.
표현의 자유 앞에서 망설이지 마라
[인간은 자유롭게 사고하고 표현할 권리를 가진다]
우리는 자신과 대척점에 있는 상대의 사고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그리고 어떻게 대응하는가.
나와 다른 의견에는 그의 경험과 생각이 축적되어있음을 받아들이고, 알아보고 싶다는 열린 사고로 다가가야 한다. 다른 관점의 사고를 이해하게 되면 자신의 사고의 범위가 확장된다. 그리고 그만큼 성숙해지게 된다.
제4장 우리를 위하여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땅에 묻어두지 마라
[ 모든 지식을 경험으로부터 얻지만, 모든 지식은 경험으로부터 시작하지는 않는다]
다른 사람의 경험한 지식을 읽으며 자기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로 인해 당신이 가진 경험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식의 영역을 넓힐 수 있다. 당신의 모든 경험을 응원한다.
가늠할 수 있는 행복은 손에 쥐면 시시해진다
[도덕적 의무를 행함으로써만 인간은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 물질 만능주의 사회에서 도덕법칙을 수행하면 자신만 손해 보거나 혹은 이용당하거나, 자신에게 유리하지 않은 조건으로 내몰려 불리해질 수 있다고 미리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인성이 격을 갖추게 되고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는다. 그로 인해 행복은 더 커진다.
도덕적 의무가 세상을 밝히는 등불임을 잊지 말자. 도덕적 의무를 다한 사람이 밝힌 등불로 다수의 사람이 함께 길을 걸을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집중할수록 당신의 존재가 빛난다
[인간은 중요한 가치를 가진 목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당신의 중요한 가치를 실현하는 밑바당이 되는 것.
(다분히 개인적인 생각임)
첫째, 조금 고리타분해 보이고 관념적이지만 '부모'다.
그들의 삶에 당신이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나게 컸음을 알아야 한다.
둘째, 타인의 존엄성 인정이다. 더불어 사는 사회다.
세상에 어떤 생명도 당신에 의해 평가될 존재는 없다.
셋째, 인간에 대한 신뢰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과 단둘이 한 엘리베이터에 타기를 거부한다든가, 누군가 친근하게 다가오면 분명 무슨 목적이 있을 거라고 여겨 한 걸음 물러선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만나면 모두 한결같이 말한다. 자신은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뒤틀린 내면으로는 올곧은 형상을 만들 수 없다
[구부러진 목재로 곧은 것은 하나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안에 구부러지고 뒤틀린 부분은 뭐가 있을까 돋보기를 들이대 보자. 어디에서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알아야 자신이 스스로 바로 잡을 수 있다.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자신을 검토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행복은 바로 여기, 지금 이 시간, 당신과 함께
[행복의 원칙은 첫째, 어떤 일을 잘하는 것, 둘째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 것, 셋째, 어떤 일에 희망을 품을 것이다]
'나만 아니면 돼'라는 무시무시한 방관자의 터널
[인간은 다른 이들을 돕는 의무를 지고 있다]
비슷한 사람들끼리만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단 말이야. 서로가 상대방보다 더 잘났다고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다고, 그게 인간들의 문제야.
해가 지자 아이는 앞에 나타난 거지 아저씨에게 도와달라고 하지만, 그는 구멍은 자신이 만든 것이기에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고 말한다. 어려움과 난관, 실의에 빠진 사람에게 얼마나 세상이 단호하고 냉담한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사람을 돕는다는 건 '자기희생'이 아니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길이고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가꾸는 길이다.
'대단해'라는 그 쉽고도 힘이 되는 한마디
[도덕적 행동은 기대되는 결과와 관계없이 해야 하는 것이다]
아파서 며칠 결근한 동료가 있다면 일이 밀려서 자신에게 넘어온 것을 탓하지 말고, 그가 출근하면 몸은 좀 어떤지 먼저 물어보는 것이다. 당신이 탈락한 그 공모전에서 상을 탄 친구가 있다면 기꺼이 축하해 주어야 한다. "대단해!"라는 이 한마디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는가.
잔뿌리 하나하나가 모여 거대한 나무를 지탱한다
[우리는 스스로 개선함으로써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
나사 하나를 잘못 조이면 기차가 멈추고 다리가 무너진다. 그러기에 '나 하나'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나로 인해 달라지는 세상을 보는 일, 생각만으로 흐뭇하지 않은가.
절대적인 진리를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법
[절대적 의무는 모든 상황에서 유지되어야 한다]
우리는 칸트의 순수이성에 의한 행동을 기본 개념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적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범위 안에서 그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촛불의 심지처럼 곧은 의지로 세상을 밝혀라
[자유로운 의지는 인간의 도덕적 행동의 기초이다.
도덕적 행동은 항상 일관성 있게 이루어져야 한다]
자기 삶에서 심지를 태우듯 일과 행동, 관계와 일상에서 일관성을 가지고 굳은 의지로 행동하라는 것이다. 굳은 의지가 아니면 흔들리고 쉽게 의지가 소멸한다. 그만큼 자신의 영향력도 줄어든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세상을 뒤집을 선무당이 된다
[작은 것을 철저히 아는 것이 많은 것을 겉으로만 아는 것보다 낫다]
지위가 높은 사람이 선무당이거나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않은 사람일 때 문제는 심각해진다. 고집스럽게 자기의 얕은 지식을 관찰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아는 게 별로 없어 응용할 경우의 수가 적어 주어진 것 외 다른 대안을 보지 못한다.
깊이 있는 지식을 취함으로써 보다 폭 넓은 방향성을 가질 수 있다. 더 알고 싶은 지적 욕구가 생기고, 아는 척을 하기에는 자신의 지식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로 인해 지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노력한다.
인간다움을 실천하는 사람이 주는 가르침을 배워라
['선생'이란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 베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크나큰 가르침을 주어야 선생이 되는 건 아니다. 작고 소소하지만 자기 행동의 변화를 가져다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바로 당신의 '선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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