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와 함께 걷는 인생산책
휘몰아치는 사회와 관계의 격량으로 삶의 중심이 흔들릴 때
(이라야 지음, 알토북스, 2024)
제1장 현명함을 위하여
똑똑하고 야무지게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지기 싫어하고 한 마디라도 더 아는 척해야 자신의 잘남이 증명된다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 아니다.
사회는 이런 사람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 상황과 문제에 맞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 현명함이 당신을 돋보이게 한다.
순수함으로 울타리를 치지 마라
[순수함은 훌륭하다. 그러나 철저히 보호되지 못하며 쉽게 유혹된다]
모두가 내 마음과 같지 않다는 사실만 알면 된다.
사후 '천국'보다 현세의 '오늘'을 누리는 삶
[종교는 모든 의무를 신성한 명령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자신이 오롯이 행복할 수 있고, 뿌듯함이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길은 자신이 정한 '정언명령'을 따라 사는 삶이다. 오롯이 자기 선의지에 의해 행하는 행동이나 말, 추구하는 정신적 가치를 실현하며 사는 것이다. 결과에 구애됨이 없이 자기 행위 자체가 선인 까닭에 그 도덕적 명령을 수행하면서 자기 삶의 의미를 재확인하며 살면 된다. 이는 신의 명령이나 권위자의 제시에 따른 행동이 아니라 오직 자기 의지, 양심, 도덕법칙에 따라 자의적 행동으로 이루어지는 삶이다.
자기애가 넘치는 금쪽이의 훈련법
[사람의 본성은 사납다. 그러므로 훈련받아야 한다]
칸트는 이러한 인간의 심리를 '사납다'로 지칭했다. 자기중심적 사고에 갇혀 자신을 우선하고 타인의 아픔이나 불행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 자신에게 가해지는 피해가 없으면 사회의 불의에 분노하지 않는 것,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타인을 이용하거나 도구화하는 것, 자신보다 열악한 환경을 조롱하거나 조금 부족한 사람을 무시하는 태도, 남의 것을 탐하는 등 '도덕'이나 '양심'의 작용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를 사납다고 일컫은 것이다.이를 위해 법과 도덕 준칙이 필요한데 이는 사나운 사람의 심리를 훈련하기 위함이다.
'나를 위한' 삶이 아닌 '나로 인한' 삶으로의 변화
[당신의 모든 행동이 보편적인 법칙이 되는 것처럼 당신의 삶을 살아라]
능동적인 인간이란 스스로 선의지를 발동시켜 자기 나름의 행동의 원칙을 세우고 실천한다. 자신을 위한 일이지만 결국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바람직한 행동이 될 때 보편성을 획득하고 행복에 이르게 된다. 이를 위해 자기에게 유리하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 자기 보존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더 나아가 자기애를 실현하기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선'이 보편 법칙이 되면 놀라운 세상이 펼쳐진다
[보편 법칙을 따르며, 동시에 의욕할 수 있는 그 준칙에 따라서만 행동하라]
자신의 윤리기준 즉, 도덕법칙 안에서 벗어나거나 어떤 일을 시도하려 할 때 우리는 불안에 떤다. 이 불안이 책임 있는 행동을 할 수 있게 돕는다.
'살아간다'는 것이 곧 목적이자, 절대적 가치가 된다
[항상 인간 개념이 목적임을 인식하고 목적을 위한 단순한 수단으로 사용하지 마라]
자기 삶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다른 사람을 이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부정당한 나의 선함을 읽어낼 '신'의 존재
[나는 믿음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지식을 부인해야 한다]
누군가 자기 의지로 선의지를 실천했다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이에 합당한 행복을 누려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 사람이 원하는 만큼 행복을 충족시켜주지 못한다. 이때 신의 존재가 요청된다. 즉 사후 세계에서 신에 의해 축복받고 행복을 보장받는 것이다.
편협한 '끼리끼리 문화'속의 당신은 맹인이 된다
[도그마의 죽음은 도덕의 탄생이다]
칸트는 종교적 신념은 좋으나 먼저 인간으로서 가치를 생각하며 삶에서 실천하라고 전한다. '도그마의 죽음'이 신의 계시를 묵살하라는 말이 절대 아니니 오해하면 안 된다.
'세상'이라는 놀이터에서 이성적 사고와 신나게 뛰어놀기
[세상은 인간의 이성적 행동을 위한 놀이터이다]
만약 친한 동료가 자기 상사를 험담한다면 당신도 동료 편에 서서 같이 욕한다. 동료의 이야기만 들었기에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없었음에도 말이다. 대중심리를 따라 자신의 의사를 결정하고 옳지 않은 행동임을 아는 데도 굳이 지적하여 반대편에 서지 않는다. 이러한 동조는 확실한 내 편이 있다는 안정감을 준다.
그러다 한순간 환경이 변하면 자신이 뱉은 말은 화살이 되어 돌아온다. 그 상사를 욕한 사람은 '나'뿐이며 직접적인 관련도 없으면서 남의 험담만 하고 다니는 우스운 사람이 되고 만다.
칸트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세상을 놀이터 삼아 신나게 살기 위해 이성적 행동이 필수라고 얘기한다. 이성적 행동을 마음껏 펼치며 능력을 인정받고 신뢰를 쌓으라는 것이다. 감정이나 인정을 앞세우면 놀이터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없다. 내 편만 보이고 선입견과 편견이 한쪽 눈을 가리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 세상에서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다.
[ 지식은 인간의 자유와 도덕적 발전을 위한 필수 요소이다]
지식 자산을 가진 사람은 겉으로는 보이지 않으나 빼앗길 위험에 처하지 않고 잃어버릴까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었다. 또한 이 지식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무한대로 커진다.
도덕적 발전 또한 마찬가지여서 지식을 갖춘 사람이 더 공공의 선, 공동의 이익을 위해 싸울 수 있다. 그로 인해 자신은 물론 공동체를 발전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킨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알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제2장 바른 가치를 위하여
무엇을 위해 오늘을 살 것인가?
인생에서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
마음속 죽은 양심을 깨우는 선한 죽비 소리
[ 정언명령은 객관적으로 필요하며 행동을 나타낸다.]
정언명령은 자기 내면의 선에 의해 행동하는 의무이자 절대적 행동 법칙이다.(<-> 가언명령: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조건을 떠올리고 행동을 결정하는 것)
오로지 인간의 본의를 실천하며 사는 것, 바로 이것이 우리가 가장 가치 있게 추구해야 할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마천루를 오르는 가장 중요한 방법, 첫 계단 밟기
[성공의 원칙은 본인의 행동이 결코 다른 사람의 행동에 따르지 않는 데 있다.]
현재 당신의 인생이 밤 12시, 깜깜한 밤중에 놓여 있다면 첫발을 먼저 들어야 한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당신이 더듬거려야 한다. 그것을 대신해 줄 사람은 없다.
자유에게 '자유'를 선물하자
[자유는 정법에 의한 것이어야 하며, 그 정법은 자유를 제약하지 않아야 한다]
선택을 함에 있어 자신에게 한없는 자유가 주어진 것 같지만 실은 시간, 돈, 일, 아이디어, 관계에 내포된 모든 자유에 제약이 붙는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우리는 자신에게 '자유'가 있나 반문하게 된다.
어떤 부분에서든 자신의 '자유' 영역은 남겨 두어야 한다. 자유는 자기 권리의 영역이지만 침범당하고 싶지 않은 자유에 대해 많이 생각해 두자.대처하는 방법까지 고민해 두면 좋다. 그리고 평소 자투리 시간에 틈틈이 자신에게 '자유'를 선물해 보자
부딪히고 깨지고 새살이 돋으며 만들어지는 단단한 사고
[우리의 사고는 경험과 개념의 조합을 통해 형성된다]
경험하지 않으면 사고의 확장이 더디고 한계에 맞닥뜨린다. 몸소 부딪히며 알아갈 때 오롯이 자신의 것이 된다.
갈등의 깊이만큼 성숙해진다
[도덕적 원리는 인간이 지닌 모든 유의미한 행동의 근간이 된다]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마음속에서 갈등이 시작된다면 칸트의 말을 되새겨보자. 자기 냬면의 도덕법칙, 자율 의지, 순수이성을 떠올리는 것이다. 그로 인해 깊은 갈등을 이겨내고 자기 의지를 실현해 나간다면 그 행동의 가치는 크다.
내 삶의 기준으로, 나다움을 만들어 가는 세상
[모든 의무는 법칙으로부터 파생되며, 법칙은 모든 의무를 지시한다]
순수이성에 따른 '도덕법칙'과 법적 규제를 가진 '자연법칙'의 의무 총량을 비교하면 어느 것이 더 클까. 심리적 압박은 어느 쪽이 더 강하게 느껴질까. 그 선택은 개인의 몫이다. 그러나 자기 내면의 도덕법칙을 확인하고 생활에서 실천하는 것은 자신이 살아가고 있음을 증명하는 길이다. 정체성이 분명하고 존엄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해야 한다. 더 살기 좋은 세상을 위하여.
'Only one', 단 하나의 당신은 오직 당신을 위해 존재한다
[존엄성을 가진 인간은 고난과 역경을 이기는 데 능하다]
하나하나 따져보면 자신의 자존감(존엄성)을 뭉개는 건 바로 자신이다. 남과 비교하면서 자기 존엄성을 깎아 먹는 것이다.
자신이 지금 무엇에 집중하고 있느냐에 따라 자신의 존엄성은 달라진다.
북극성처럼 불변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도리
[옳고 그름은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도덕적 원리는 변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 기만하거나 무시하는 행위, 남을 이용하는 행위 등 인간으로서 절대 행하지 않아야 할 도덕적 원리는 시대가 변하고 문화가 달라도 불변한다.
다름을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 시선
[인간은 자유롭고 동등한 존재로서 존엄성을 가진다]
다름을 인정하라고 하지만 우리는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시선으로 보지 않는가
무엇에 감탄하고 어디를 바라볼 것인가
[경이로움과 경외심으로 마음을 채우는 두 가지가 있다. 바로 저 위의 별이 총총한 하늘과 내 안에 있는 도덕률이다]
자연에서 경이로움을 느끼는 자는 교만하거나 오만한 삶을 살 수 없는 겸허한 자이다.
내면의 흔들림이 심할수록 자기 안의 천사에 의지하라
[우리의 의무는 항상 법칙과 도덕에 따라야 하며, 감정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의무는 기필코 수행해야 하는 철칙이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자신의 믿음을 의심하고 눈과 귀를 열어라
[우리는 믿음에 의존하는 것보다 이해에 의존해야 한다]
이해는 사리를 분별하고 이치에 맞게 해석하는 것이다. 사정을 헤아리고 문제를 직시하며 자신의 믿음과 대조해 본다. 자기 믿음을 점검해보고 어떤 오해나 착오가 있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자기 믿음을 수정해 나가면서 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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