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스승 정약용이 가슴으로 남긴 유산
(정약용 지음, 박지숙 엮음, 푸른책들, 2015)
3. 둘째 학유에게 노잣돈 삼아 내리는 교훈
노는 사람 없이 모두 일하라
옛날에 어진 임금들은 가장 적당한 자리에 사람을 앉히는 지혜로움이 있었다. 눈이 먼 사람은 음악을 연주하게 했고, 절름발이에게는 대궐문을 지키게 했다. 환관은 궁중에서 일하게 했고 꼽추나 불구자, 허약한 사람이라도 알맞은 곳에 적절하게 일을 맡겼다. 그러니 너도 이 점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야 한다. 너희는 종종 "집에 있는 사내종은 힘이 약해서 큰일을 시킬 수 없다."고 투덜대더구나. 하지만 이는 우리 집종이 일을 못하는 게 아니라, 너희가 난쟁이에게 산을 뽑으라는 것처럼 가당치 않는 일거리를 맡기기 때문이다.
집안일을 처리하는 법은, 위로는 주인 내외에서부터 남녀노소 형제와 동서에 이르기까지, 아래로는 노비들과 그 자식에 이르기까지 무릇 다섯 살이 넘으면 각각 할 일을 나눠 주어 잠시라도 놀지 않게 해라. 그리하여 가난을 걱정하지 않게 된다.
남몰래 비밀을 만들지 마라
남이 알지 못하게 하려거든 그 일을 하지 말고, 남이 듣지 못하게 하려거든 그 말을 하지 마라. 그것이 세상살이에서 제일이다. 이 두 마디 말을 늘 외우고 실천하면 크게는 하늘을 섬길 수 있고 작게는 가정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온 세상을 발칵 뒤집고 뒤흔드는 재난이나 근심거리, 한 집안을 뒤엎는 불행 등은 죄다 비밀로 하는 일에서 생겨나는 법이다. 그러니 행동하고 말할 때는 먼저 그 결과를 깊이 생각하고 신중히 하여라.
편지를 쓸 때에는
편지를 쓸 때는 두 번 세 번 읽어 보면서 '이 편지가 번화한 사거리에 떨어졌을 때 내 원수가 보더라도 죄를 뒤집어쓰지 않을 것인가?'라고 생각하면서 붓을 들어야 한다. 또 '이 편지가 수백 년 동안 전해져서 안목 있는 사람들이 읽더라도 비난받지 않을 것인가?'라고 생각한 뒤에 봉투를 붙여야 한다. 이것이 바로 군자가 삼가는 자세이다.
나는 젊었을 때 편지를 너무 급하게 쓰는 버릇이 있었다. 그래서 이 원칙을 여러 번 어겼다. 중년에는 화를 당할까 봐 두려워 잘 지켰더니 큰 도움이 되었다. 너희도 이 점을 명심하도록 해라.
4. 맏이 학연에게 다시 내리는 교훈
의원 행세를 그만두어라
네가 갑자기 의원이 되었다니 어찌된 일이냐? 무슨 의도이며 무슨 이익이 있어서 그러했느냐? 의술을 핑계 삼아 벼슬아치들과 사귀면서 이 아비의 석방을 꾀하려고 그러느냐? 그런 일은 해서도 안 되지만 그럴 수도 없을 것이다. 너는 겉으로만 인정을 베푸는 척하는 사람들을 알지 못하느냐? 힘 안 들이고 입만 놀려 네 마음을 기쁘게 해 주고는 돌아서서 비웃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걸 너는 아직도 깨닫지 못했더나? 은근히 권세 있는 듯이 행세하여 다른 사람들이 굽실거리게 만드는 것인데, 나는 그 술수에 빠졌으니 참으로 어리석구나!
무릇 벼슬이 높고 학문이 깊은 사람 중에도 의술을 터득한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의원 노릇을 하지 않고, 병자가 있는 집에서도 바로 찾아가 묻지 못한다. 몇 차례의 간곡한 부탁을 받거나, 위급하여 어쩔 수 없는 경우에야 처방을 해준다.
제 3부 둘째 형님께 드리는 편지
근검과 절약에 대하여
집안을 다스리는 요령으로 마음속에 새겨 둘 두 글자가 있다. 첫째는 근이요, 둘째는 검이다. 하늘은 게으른 것을 싫어하여 결코 복을 주지 않는다. 하늘은 사치스러운 것을 싫어하여 결코 도움을 내리지 않는다. 유익한 일은 잠시도 멈추지 말고 무익한 일은 털끝만큼도 꾸미지 마라.
봉록과 지위는 다 떨어진 신발처럼
상관이 심한 말로 나를 위협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내가 이 봉록과 지위를 보전하려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간사한 아전이 비방을 조작하여 나를 겁주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내가 이 봉록과 지위를 지키려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재상이 청탁을 하여 나를 더럽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내가 이 봉록과 지위를 유지하려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릇 봉록과 지위를 다 떨어진 신발처럼 여기지 않는 자는 하루도 이런 자리에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흉년에 백성들의 조세를 면제해 줄 것을 요구했는데 상관이 들어주지 않으면 벼슬을 버리고 떠난다. 상관이 요구한 일이 있을 때 그것을 거절했으나 듣지 않으면 벼슬을 버리고 떠난다. 상관이 나의 바른 몸가짐을 손상시키면 벼슬을 버리고 떠난다. 상관이 언제나 나를 휙 날아가 버릴지 모르는 모르는 새처럼 생각한다면, 내가 요구하는 것을 감히 듣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나에게 무례함을 저지르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내가 정치하기는 물 흐르듯 쉬울 것이다. 하지만 만약 보석을 품은 자가 힘센 사람을 만난 것처럼 조마조마하고 부들부들 떨며 오로지 그것을 빼앗길까 두려워 한다면, 역시 그 지위를 보전하기 어려울 것이다.
수입을 헤아려 지출하라
재물을 남에게 주는 것을 혜라고 한다. 그러나 자기에게 재물이 있고 난 뒤에야 남에게 베풀 수 있는 것이다. 자기에게 없는 것을 남에게 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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