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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방

아몬드

by 행복배터리 2024.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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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손원평 지음, 다즐링, 2023)

담임은 그사이 아이들의 이름을 외우느라 고생한 것  같았지만 누구도 그런 모습에 감동하지 않았다. 그녀가 수고롭게 외운 아이들의 이름은, 누구야 조용히 해, 누구야 좀 앉아 줄래, 따위로밖에 쓰이지 않았으니까. 학생들의 주목을 이끌어 내는 데 소질이 없는 사람인 건 분명했다.

'구할 수 없는 인간이란 없다. 구하려는 노력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사형수 출신의 미국 작가 P.J.놀란이 한 말이다. 그는 무슨 의미로 그렇게 썼을까. 도와 달라는 손짓이었을까. 아니면 깊은 원망이었을까.
- 근데 잠은 잘 와? 학교는 어떻게 다녀? 망할, 가족이 네 앞에서 피 흘리면서 죽었는데.
- 그냥. 살게 돼. 나보다 오래 걸릴지는 몰라도 다른 사람들도 얼마 안 돼 먹고 자고 다 할걸. 사람은 살게 돼 있는 존재니까.

사이코패스.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들이 나를 놀릴 때 쓰던 대표적인 단어다. 엄마와 할멈은 길길이 뛰었지만 사실 나는 그 말에 어느 정도 동의했다. 나는 진짜 그런 건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죽여도 죄책감이든 혼돈이든 아무것도 못 느낄 테니까. 그렇게 타고났으니까.
- 타고나? 그 말이 세상에서 제일 재수 없는 말이야.

어딘가를 걸을 때 엄마가 내 손을 꽉 잡았던 걸 기억한다. 엄마는 절대로 내 손을 놓지 않았다. 가끔은 아파서 내가 슬며시 힘을 뺄 때면 엄마는 눈을 흘기며 얼른 꽉 잡으라고 했다. 우린 가족이니까 손을 잡고 걸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반대쪽 손은 할멈에게 쥐여 있었다. 나는 누구에게서도 버려진 적이 없다. 내 머리는 형편없었지만 내 영혼마저 타락하지 않은 건 양쪽에서 내 손을 맞잡은 두 손의 온기 덕이었다.

- 나한테 그건  있지. 살아서 뭐하려고, 하는 질문이랑 비슷해. 넌 무슨 목적이 있어서 살아? 솔직히 그냥 살잖아. 살다가 좋은 일 있으면 웃고 나쁜 일 있으면 울고. 달리기도 마찬가지야. 1등을 하면 좋고 아니면 아쉽겠지.

나중에 전해 들은 이야기이지만 그는 자신이 치르게 될 대가가 생각보다 크다는 걸 알고서도 시종일관 미소를 띤 채였다고 한다. 그의 마음속은, 아니 대체 인간이란 건 어떻게 설계된 걸까. 그가 다른 표정을 지을 수 있는 날이, 그런 기회가 그의 인생에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특별부록-외전 단편> 상자 속의 남자

사람들이 쉽게 감사의 마음을 잊는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굳이 남들이 감사할 일을 하지 않으면 그만인 것이다. 누군가가 고마워할 만한 일을 한다는 건 내가 더 위험해지거나 손해를 본다는 뜻이니까. 그러니까 명심하고 새겨야 한다. 절대로, 절대로 나와 상관없는 일에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


^♡^

선척적 요인보다 후천적 환경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소중한 우리의 영혼이 타락하지 않게 양손으로 서로를 맞잡고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사회를 구축해야 함을 일깨운다.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과 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은 절망스럽다. 감사와 배려, 미안함을 잊은 채 자신의 욕구와 감정만을 앞세우는 그 사람을 보면서 '사람이 저럴 수도 있구나!"라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계속 반복되는 만행(본인은 정당한 행동이라 생각하겠지만)에 얼음처럼 차가워지는 내 마음 - 너에게는 감사할 일을 하지 않겠다 - 은 점점 굳어져 갔다.  

나만 그렇게 느낄까? 그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했고, 생활하고, 생활할 사람들은 모두 경중의 차이는 있지만 느끼게 될 것이다.

멀리서 그사람을 지켜보게 되면서 내 마음의 상처가 아물어 가며 나는 생각한다. 온전히 너의 잘못은 아니다. 너를 키운 이 사회의 잘못도 있겠구나! 그리고 내 주변의 사랑과 감사와 배려와 미안함으로 무장하고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그들을 사랑한다. 그들과 같이 할 수 있게 해 준 신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그 감사의 마음이 얼음처럼 차가워진 내 마음을 녹여 '그를 구하려는 노력을 그만두면 안되겠구나'라고 의무감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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