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강영희 옮김, 브라운 힐, 2007)
1. 배움에 대하여
루스티쿠스에게서는 마음을 수양하는 법을 배웠는데, 그는 공리공론을 꾸미거나 사변적인 회고록이나 쓰며 잘난 체하는 궤변론자들을 경계하라고 일렀다. 또 인격자인양 자기를 내세우거나 과시를 위한 자선 행위, 혹은 수사학과 언어의 유희를 삼가고 집안에 있을 때는 화려한 의상을 입지 말라고 충고해 주었다. 글을 쓸 때에는 쉬운 문체로 써야 한다고 말했으며, 또한 언쟁을 벌이거나 무례하게 행동하여 사이가 나빠진 사람일지라도 그쪽에서 화해를 청한다면, 즉시 응해줄 수 있는 너그러운 기풍을 가지라고 말했다. 아울러 독서를 할 때는 피상적인 이해에 만족하지 말고 내용을 정확하게 읽을 것, 말 잘하는 사람에게 쉽게 설득 당하지 않도록 경계할 것 등을 배웠다. 그는 또 자신이 아끼던 장서 에피테토스의 논설문 <인생 강의>를 내게 선물하여 기쁨을 안겨 주었다.
2. 인생에 대하여
다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무관심하다고 해서 불행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 속 움직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불행해진다.
3. 운명에 대하여
무리하게 약속을 깨뜨리거나, 자존심을 잃게 하거나, 타인을 증오하게 하거나, 의심케 하거나, 저주케 하거나, 위선을 행하게 하는 모든 욕망에서 얻어지는 이익을 중요시하지 말라. 마음 속 신성을 존중하는 사람은 꾸밈이 없고, 불평하지 않으며, 쓸데없는 고독을 자초하지 않으며, 대중과 휩쓸리는 일은 바라지 않는다. 또 무엇보다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영혼이 육체 안에 깃들어 있는 시간에 대해서도 초조해하거나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가령 지금 당장 세상을 떠나야 한다고 해도, 그는 보통의 일상적인 일을 행하는 것처럼태연하게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또한 그의 유일한 관심사는, 일생 동안 자신의 이성이 문명사회의 지적, 사회적 동물로서 벗어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뿐이다.
4. 죽음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시골이나 바닷가, 또는 깊은 산중에 은둔해 살기를 바란다. 당신 역시 이런 욕망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것일 뿐 철학을 실천하는 사람에게는 부질없는 짓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그 자신 속으로 은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자기 자신의 영혼 속보다 더 조용하고 평온한 은신처는 없다.
.....
명성이란 괴물이 당신을 괴롭히는가?
그렇다면 보라. 세상의 모든 사물은 얼마나 빨리 잊혀지는가! 그리고 현재의 앞뒤로 펼쳐진 영원이란 심연을 상기하라. 갈채의 메아리는 얼마나 공허하고, 열광하는 자들은 또 얼마나 무분별하고 변덕스러우며, 그 찬사가 미치는 공간은 얼마나 협소한가? 이 세계는 단지 하나의 점에 불과하며 우리가 사는 곳은 그 점 안의 미세한 한 귀퉁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 안에 당신을 찬양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으며 그들은 또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들인가?
무엇보다도 당신의 마음을 불안, 긴장, 부담으로 혼미케 하지 말고 편협하게 하지 말며, 다만 한 인간으로서 언젠가는 죽어야 할 숙명을 지닌 피조물로서 인생을 관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후 항상 명심해야 할 다음의 두 가지 진리를 생각하라.
첫째, 외적인 존재인 주위의 사물은 우리의 영혼에까지는 이르지 못하는 것이므로 우리 마음의 동요는 오로지 내면의 관념에 의해서 생겨난다.
둘째, 지금 당신이 바라보는 눈앞의 모든 사람은 순식간에 변하는 것으로 곧 사라져 버릴 것이다. 또한 당신도 그 수많은 변화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당신은 머지않아 곧 죽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생각은 여전히 단순해지지 못하고 번뇌에 사로잡혀 있으며, 손해를 입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모든 이들에게 자비롭지 못하다. 또한 이성적이고 정당한 행위를 하는 것이 유일한 지혜라는 사실을 모른다.
5.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지금 눈앞에 존재하는 사물이나 새로 생겨나는 사물이 얼마나 빨리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는지를 상기하라.
실체란 쉼 없이 흐르는 강물과 같으며, 사물의 활동은 끊임없는 변화이다. 그 활동은 영원한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고, 그것의 원인 또한 영원한 변화를 거듭하는 것이다. 결국 이 세상에 정지해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이 영원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과거와 미래라는 이 무한의 심연을 생각하라.
따라서 주위의 것들이 마치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거나, 고통이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고뇌하고 실의에 빠져있는 자는 참으로 어리석다. 그런 것들이 당신을 괴롭히는 것은 오직 한순간이며,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6. 자연의 순리에 대하여
당신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을 때에는 당신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장점, 예컨대 갑이라는 사람의 적극성, 을이라는 사람의 겸손, 병이라는 사람의 도량, 그 밖의 사람들의 장점을 생각해보라. 왜냐하면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이 덕을 풍부하게 나타낼 때처럼, 그리고 그 덕이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날 때처럼 기쁜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그들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 보아야 한다.
명예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행복은 남의 행위 속에 있다고 생각하며, 향락을 즐기는 사람은 자기의 감정 속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작 있는 사람은 자기의 행동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7. 우주의 질서에 대하여
머지 않아 당신은 모든 일을 잊어버리고, 머지 않아 모든 사람이 당신을 잊어버릴 것이다.
자기 안으로 눈을 돌려라. 당신을 지배하는 이성적 원리의 본성은 올바른 행위를 하고 마음의 평안을 얻으면 스스로 만족한다.
언제 어디서나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현재 자기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경건한 마음으로 만족하고, 자기 주위 사람들에게 선한 일을 하며, 정밀한 검토를 거치지 않고서는 어떤 것도 자기 마음속에 스며들지 못하도록 현재의 생각을 바로잡는 것이다.
8. 선과 악에 대하여
당신은 한 시간 동안 세 번씩이나 자기 자신을 저주하는 인간에게서 칭찬을 받고 싶은가? 자기 마음에도 들지 않는 인간의 마음에 들고 싶단 말인가? 자기가 한 일의 거의 전부를 후회하는 인간이 자기 자신의 마음에 든다고 할 수 있을까?
9. 혼돈에 대하여
일하라. 그러나 비참한 자로서 일하지는 말라. 또한 남에게 동정을 구하거나 칭찬을 듣고 싶어서 일하지는 말아라. 다만 당신이 일을 할 것인지 하지 않을 것인지 하는 것은 사회적인 이성의 지시에 따라 결정한다.
10. 사회적 존재에 대하여
만일 과오를 범하는 사람이 있으면 천천히 타이르고 그의 잘못을 지적해줘라. 그렇게 할 수 없으면 자신을 탓하거나 아니면 아무도 탓하지 말라.
어떤 일에 대해서도 비관하거나 불평하는 사람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면서 땅을 치고 비명을 지르는 돼지와 다를 것이 없다. 또한 침상에서 혼자 묵묵히 누워서 우리의 불행을 한탄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오직 이성적인 동물만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자진하여 따른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러나 그 밖의 모든 것은 단지 복종만 강요된다는 것을 기억하라.
무슨 일을 할 때에는 잠시 멈춰 서서 자문해보라. "죽으면 이것을 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해야 할까?" 하고
건전한 눈은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지 보아야 하며 굳이 "나는 초록색으로 된 것을 보고 싶다."고 투정을 부려서는 안 된다. 그것은 눈병이 난 사람이나 할 말이다. 마찬가지로 건전한 청각과 후각은 들리는 것과 냄새나는 것을 모두 지각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건전한 위장은 마치 방아가 모든 곡식을 찧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모든 음식을 소화시킬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건전한 정신도 모든 일을 적절히 처리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 내 자식을 살려주십시오." 또는 " 내가 하는 일이 모두 사람들의 칭찬을 받게 하여 주십시오" 하는 것은 눈이 초록색으로 된 것만 보기를 원하고, 이가 부드러운 음식만 씹기를 원하는 것과 같다.
11. 영혼에 대하여
그들은 서로 상대방을 경멸하면서도 아부를 하고, 서로 상대방을 이기려고 하면서도 허리를 굽히고 양보한다.
"겨울에 무화과를 찾는 사람은 미친 자다. 아이를 낳지 못할 나이가 되었는데, 아이를 바라는 사람도 역시 미친 자다."
12. 도덕적 삶에 대하여
첫째로, 무슨 일이든지 아무 목적 없이 닥치는 대로 해서는 안된다. 둘째로, 공익 이외의 어떤 일도 행동의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적시에 일어난 일만을 선이라고 생각하고 올바른 이성에 따르기만 하면 성취한 일이 많든 적든 결국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며, 세계를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도 그만, 짧아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