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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방

토지 3부

by 행복배터리 2024.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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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대하소설
(박경리, 마로니에북스, 2012)

1권

제1편 만세 이후


"이 사람아, 나을 벵이 따로 있지. 벵났다고 머 내가 낙심을 하는 것도 아니고 거짓말로 들을지는 모르지마는 이런 대로 괜찮다. 앞뒷일 생각 안 한게 젤 편하구마"
관수는 그 말이 이해될 듯했다. 육신은 병들었으나 마음은 쉬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산다는 것에 대한 목마름. 늘 목에서 단내가 났었을 용이. 그렇다. 용이는 만사에서 물러서서 구경을 하는 심정인 것이다. 몸서리치게 추하던 임이네도 돌부처가 거기 있는 듯 분노하지 않았고 미워하지 않았고 물론 사랑하지도 않았다. 처음 간도에서 돌아왔을 때 영팔이는 봉곡으로 나가 농사를 짓게 되었고, 용이는 최참판네 마름 비슷한 직분을 갖고 작년까지 일을 보아온 터인데 지금은 그 일을 다른 사람이 맡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럭저럭 생활이 어렵지는 않았다. 임이네로 말미암아 최서희에 대하여 느껴왔던 복잡하고 미묘한 심적 갈등. 그 주술 같은 것에서 풀려나가기는 월선이 죽은 후부터였지만 용이는 임이네에 대한 애증을 이제 모두 넘어서 버린 것이다. 영원히 화해할 수 없는 대상에서 그 마음마저 거두어버린 것이다. 그것은 용이의 삶, 삶의 종말, 생명의 불씨가 꺼져버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왜 나만 혼자 남겨두셨소. 모두 다 어깨의 짐을 풀어놓고 나한테만 떠맡겨놓고 가시지 않았습니까?  형식이지만 최씨네 가문....  이제 뼈대는 세우지 않았소? 그러나 내가 받은 수모, 상처,  설움, 아아 나는 지칙 피곤하고 더이상은 부대끼고 싶지가 않소. 그 부끄럽고 끔찍스럽고 저주스런 일을 지우고 싶소! 지워주시오! 지워주시오!'
철부지처럼 훌쩍훌쩍 울고 싶은 심정을 외면하듯 서희는 평사리를 외면하는 것이다.

제2편 어두운 계절


"직분이 높고 낮고 간에 그놈 아이들, 왜놈 밑에 빌붙어서 사는 놈들은 상대편이 약하다 싶으면은 밟아 뭉개버릴라 하고 잘난 체하면은 겉으로라도 우대하는 버릇이 있으니 그 수를 알아서 앞으로 처신하면은 다소 일이 수월할 게고,"
약하다 싶으면은 밟아 뭉개버리려 한다는 말에 뜻이 있다는 것을 한복이는 알아차렸다. 약점,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것을 발설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인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2권

제2편 어두운 계절


강물도 흘러가고 나뭇잎도 흔들리고, 물건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면은 구르는 법이거늘 똬리를 틀고서 총대 앞에서 산송장이, 아아- 그렇게 되지를 않으려거든 친일파가 되어야 하느니라. 대일본제국에 충성을 맹세해야 하느니라. 허기야 그것인들 뜻대론 아니 되지. 농부들 주제에 어디 빈 구멍이 있다고 고개를 쳐드누, 쯔쯔쯔.... 글잘하고 문벌 좋고 돈 많은 놈들이나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인 것을, 허허어. 변절의 기회마저 박탈당한 농부들아! 허나 그것은 하늘이 내린 그대들의 복이니라.'

"앞뒤 재가면서 기어라 하면 기고 서라 하면 서고 눈물 흘리라 하면 흘리고... 눈 부릅뜨다가 뺨대기 하나 더 맞는 것이 얼마나 바보짓인가 그걸 깨달았소."
"그래 그걸 깨달았이믄 좀 덜 억울할 기다. 잘난 말 몇 마디 하는 것, 그건 아무짝에도 못 쓴다. 바보 시늉, 미친 시늉 뭣이든 빠져나오는 게 젤이제. 싸움이란 그래야 이기는 법이거든. 감정 때문에 힘 빼는 것, 그것같이 어리석은 일은 없다, 앞으로 살아가자믄,"

제3편 태동기


성삼대의 결혼생활이 불행한 것은 친구들 간에 유명했다. 부모가 시킨 결혼이었지만 성삼대는 혼전에 여학교를 다니던 참한 소녀를 본 일이 있었다. 그러니깐 성삼대로선 만족한 마음으로 신부를 맞이했던 것이다. 온순하고 소극적이며 여학교를 나왔어도 구식의 사고방식에서 헤어나질 못한 여자였는데 어찌 된 일인지 남편을 싫어하는 것이었다. 마음에 둔 사람이 따로 있었던 것도 아니며 안 살고 가겠다는 용단도 내리지 못하면서 거의 본능적으로 남편을 싫어하는 것이다. 계집아이를 하나 낳은 후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그것은 남자에게는 거의 치명적인 고통이 아닐 수 없었다. 그 고통을 청산 못하는 것은 성삼대가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이며 그것은 또 피차를 위해 비극이었다. 그리고 무한한 인내이기도 했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과 사는 여자의 경우도 그러했고 사랑이 없는 여자를 옆에 두어야 살 수 있는 남자의 경우도, 언젠가 선우일과 상현은 폭음을 하고 우는 성삼대를 본 일이 있다.

3권

제4편 긴 여로


'서의돈 선생.... 구변 좋고 배짱 좋고 훌륭한 사내지.' 존경할 만한 값어치가 충분히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석이도 안다. 그러나 석이 마음속에는 반감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질투하고는 다른 감정이다. 기화를 깊이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연은 그쪽에서 잘랐다. 그것은 사내의 의지였는지 모른다. 기생의 처지에서 그의 사랑을 받아들였고, 발길을 끊었을 때 그러려니 했었던 그때의 기화도 상기된다. 만일 서의돈이 조국의 독립이라는 큰 뜻을 품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역시 마찬가지로 기화는 버림받았을 것이라고 석이는 생각한다. 명문의 후예들, 선비의 후예들, 그들에게 애정이란 이른바 풍류에 불과한 것이었을 테니까. 또 기화는 기생이었으니까. 풍류와 기생은 당연한 결과였는지 모른다. 다른 사람의 표현을 빌리자면 서의돈은 기화에게 미쳤다. 바로 그 미친 상태에서도 단호하게 발길을 끊었던 서의돈의 냉정함에 석이는 반감을 가졌던 것이다. 그것은 통틀어  양반들의 냉정함이요 기생이나 서민들에 대한 근본적인 모멸이기 때문에 석이는 서의돈에 대하여 순수한 존경을 바칠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 서의돈에 대한 기억을 되살린 것은 석이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기화를 생각한 탓은 아니었을까. 학교 교사와 기생, 일가의 가장과 기생, 어떤 시기가 닥치면 자신도 결별을 감행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생각한 때문이 아니었을까.

4권

제 4편 긴 여로


달팽이가 집을 짊어지고 다니듯이 평생 배신자의 죄책감을 짊어지고 다녀야 했으니.... 그놈의 짊어진 짐을 부리려고 온갖 지랄을 다 해보았으나 무슨 소용이 있어? 여전히 배가 고프면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었고 눈꺼풀이 무거워지면 잠자리를 찾았고, 연명할 이유도, 연명해가며 해야 할 일도 없으면서 죽음은 여전히 두려운 것이더군."

제 5편 젊은 매들


처음 소림의 손등을 보았을 때 다소 놀라기는 했으나 정윤은 소림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늘 행운을 꿈꾸었지만 소림이 행운을 갖다 주리라는 상상을 한 적이 없었다. 행운이 이같이 비참한 수모 위에 쌓여지는 성이라는 것도 미처 몰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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