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의 창작론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김영사, 2002)
이력서
작가의 자질은 타고나는 것이다. 그러나 특별한 자질을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적어도 조금씩은 문필가나 소설가의 재능을 갖고 있으며, 그 재능은 더욱 갈고 닦아 얼마든지 발전시킬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이 세상에 '아이디어 창고'나 '소설의 보고'나 '베스트셀러가 묻힌 보물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소설의 아이디어는 그야말로 허공에서 느닷없이 나타나 소설가를 찾아오는 듯하다. 전에는 아무 상관도 없던 두 가지 일이 합쳐지면서 전혀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설가가 해야 할 일은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막상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그것이 좋은 아이디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어떤 이야기를 쓸 때는 자신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생각해라. 그리고 원고를 고칠 때는 그 이야기와 무관한 것들을 찾아 없애는 것이 제일 중요해."
내가 처음으로 두 건의 기사를 제출하던 그날, 굴드는 그 밖에도 흥미로운 조언을 해주었다. 글을 쓸 때는 문을 닫을 것, 글을 고칠 때는 문을 열어둘 것. 다시 말해서 처음에는 나 자신만을 위한 글이지만 곧 바깥 세상으로 나가게 된다는 뜻이었다. 일단 자기가 할 이야기의 내용을 알고 그것을 올바르게- 어쨌든 자기 능력껏 올바르게 - 써놓으면 그때부터는 읽는 사람들의 몫이다. 비판도 그들의 몫이다. 그리고 작가가 대단히 운 좋은 사람이라면 그의 글을 비판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보다 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글쓰기는 외로운 작업이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굳이 믿는다고 떠들지 않아도 좋다. 대개는 그냥 믿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지금 여러분의 책상을 한구석에 붙여 놓고, 글을 쓰려고 그 자리에 앉을 때마다 책상을 방 한복판에 놓지 않은 이유를 상기하도록 하자. 인생은 예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 글쓰기란 무엇인가
정신 감응이다
글쓰기라는 것을 시작하면서 여러분은 불안감을 느낄 수도 있고 흥분이나 희망을 느낄 수도 있다. 심지어는 절망감을 가질 수도 있는데, 그것은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생각들을 결코 완벽하게 종이에 옮겨적을 수는 없을 것이라는 예감 때문이다. 여러분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눈을 가늘게 뜨면서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때려눕힐 태세로 글쓰기를 시작할 수도 있다.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있어서 글쓰기를 시작할 수도 있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어서 시작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그러나 경박한 자세는 곤란하다. 다시 말하겠다. '경박한 마음으로 백지를 대해서는 안 된다'
연장통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글쓰기에서도 자기가 가진 최선의 능력을 발휘하려면 연장들을 골고루 갖춰놓고 그 연장통을 들고 다닐 수 있도록 팔심을 기르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놓으면 설령 힘겨운 일이 생기더라도 김이 빠지지 않고, 냉큼 필요한 연장을 집어들고 곧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어휘들은 연장통 안에서도 제일 위층에 넣어야 한다
낱말을 선택할 때의 기본적인 규칙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제일 먼저 떠오른 낱말이 생생하고 상황에 적합한 것이라면 당연히 그 낱말을 써야 한다.' 여기서 머뭇거리면서 이리 저리 궁리하기 시작하면 곧 다른 낱말이 생각나겠지만 - 다른 낱말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 그것은 처음 떠오른 낱말만큼 훌륭하지도 않겠거니와 여러분이 정말 말하려는 의미를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할 것이다.
문법도 연장통의 맨 위층에 넣어야 한다.
말이나 글에서 낱말들은 일곱 개('오!'나 '저런!'이나 '에라 모르겠다!' 따위의 감탄사를 포함시킨다면 여덟 개)의 요소로 분류된다. 이런 요소들로 이루어진 문장들은 우리 모두가 동의하는 문법 규칙에 맞춰 구성해야만 한다. 규칙을 깨뜨리면 혼란과 오해를 빚을 뿐이다. 문법을 모르면 형편없는 문장이 나온다.
잘 쓸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규칙을 따르는 편이 나을 것이다.
'수동태는 한사코 피해야 한다'
소심한 작가들이 수동태를 자주 쓰는 이유를 굳이 추측해보려고 하지 않았지만 나는 한 번 해보겠다. 소심한 작가들이 수동태를 좋아하는 까닭은 소심한 사람들이 수동적인 애인을 좋아하는 까닭과 마찬가지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수동태는 안전하다
골치아픈 행동을 스스로 감당할 필요가 없다. 빅토리아 여왕의 말을 빌리면, 주어는 그저 눈을 지그시 감고 영국을 생각하기만 하면 그만이다.(빅토리아 여왕이 첫날밤을 맞는 딸에게 해주었다는 충고-옮긴이)
부사는 여러분의 친구가 아니다
부사를 많이 쓰는 작가는 대개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할 자신이 없다. 자신의 논점이나 어떤 심상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다.
가령 이 문장을 보라. '그는 문을 굳게 닫았다' 아주 형편없는 문장은 아니지만, 여기서 '굳게'라는 부사가 정말 필요한 것인지 생각해보라.
부사는 민들레와 같다. 잔디밭에 한 포기가 돋아나면 제법 예쁘고 독특해 보인다. 그러나 이때 곧바로 뽑아버리지 않으면 이튿날엔 다섯 포기가 돋아나고 ... 그 다음날엔 50포기가 돋아나고... 그러다 보면 여러분의 잔디밭은 철저하게, 완벽하게, 어지럽게 민들레로 뒤덮이고 만다. 그때쯤이면 그 모두가 실제 그대로 흔해빠진 잡초로 보일 뿐이지만 그때는 이미 - 으헉!! - 늦어버린 것이다.
글을 잘 쓰려면 문단을 잘 이용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러려면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장단을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
목조 건물은 한 번에 한 장씩 널빤지를 붙여가며 만들고, 벽돌 건물은 한 번에 한 장씩 벽돌을 쌓아올려 만든다. 여러분도 한 번에 한 문단씩 써나가면 되는 것인데, 이때 사용하는 건축 재료는 여러분의 어휘력, 그리고 기본적인 문체와 문법에 대한 지식이다. 한 층 한 층 가지런히 쌓아올리고 문짝도 고르게 대패질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건설할 수 있다. 힘이 넘친다면 대저택들을 지어도 좋다.
창작론
나는 소설이란 땅 속의 화석처럼 발굴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소설은 이미 존재하고 있으나 아직 발견되지 않은 어떤 세계의 유물이다. 작가가 해야 할 일은 자기 연장통 속의 연장들을 사용하여 각각의 유물들을 최대한 온전하게 발굴하는 것이다.
작가가 되고 싶다면 무엇보다 두 가지 일을 반드시 해야 한다.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슬쩍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지름길도 없다.
독서가 정말 중요한 까닭은 우리가 독서를 통하여 창작의 과정에 친숙해지고 또한 그 과정이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사람은 작가의 나라에 입국하는 각종 서류와 증명서를 깆추는 셈이다. 꾸준히 책을 읽으면 언젠가는 자의식을 느끼지 않으면서 열심히 글을 쓸 수 있는 어떤 지점에(혹은 마음가짐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이미 남들이 써먹은 것이 무엇이고 새로운 것이 무엇인지, 여전히 효과적인 것은 무엇이고 지면에서 죽어가는(혹은 죽어버린) 것은 무엇인지 등등에 대하여 점점 더 많은 것들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책을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여러분이 펜이나 워드프로세서를 가지고 쓸데없이 바보짓을 할 가능성도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쓰되 그 속에 생명을 불어넣고, 삶이나 우정이나 인간 관계나 성이나 일 등에 대하여 여러분이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들을 섞어넣어 독특한 것으로 만든어야 한다. 특히 일이 중요하다.
내가 보기에 소설은 장편이든 단편이든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A지점에서 B지점을 거쳐 마침내 Z지점까지 이야기를 이어가는 서술, 독자에게 생생한 현실감을 주는 묘사, 그리고 등장 인물들의 말을 통하여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대화가 그것이다.
그렇다면 플롯은 어디 있느냐는 질문이 나올 법하다. 대답은-적어도 내 대답은-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 나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플롯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첫째, 우리의 '삶'속에도 플롯 따위는 별로 존재하지 않으므로, 둘째 플롯은 진정한 창조의 자연스러움과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하므로.
묘사는 독자들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탁월한 묘사력은 후천적인 능력이므로, 많이 읽고 많이 쓰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묘사는 작가의 상상력에서 시작되어 독자의 상상력으로 끝나야 한다.
우리가 거금을 투자하여 책을 사는 것은 스토리를 읽기 위해서다. 식당에 대한 묘사가 길어지면 스토리의 진행 속도가 느려지는데, 그렇게 되면 좋은 소설이 가지고 있는 마법의 힘이 사라져버릴 지도 모른다. 소설이 '지루해져서' 독자들이 책읽기를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 그 지루함은 작가가 자신의 묘사력에 스스로 도취한 나머지, 이야기를 진행시켜야 한다는 최우선 과제를 망각한 탓일 때가 많다.
사실적이고 공감을 주는 대화문을 쓰려면 '반드시' 진실을 말해야 한다.
내가 대화에 대하여 이야기한 내용은 소설에서 등장 인물들을 창조하는 데도 똑같이 적용된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눈여겨보는 일, 그리고 본 것에 대하여 진실을 말하는 일이다.
<미저리>에서 폴 셸던을 감금하는 애니 윌크스는 우리가 보기에는 정신병자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 자신이 보기에는 지극히 멀쩡하고 정상적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여러분이 잠시나마 애니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만들 수 있다면 - 그녀의 광기를 이해하도록 만들 수 있다면 - 나는 여러분이 공감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일체감마저 느낄 수 있는 등장 인물을 창조한 것이다.
좋은 소설은 반드시 스토리에서 출발하여 주제로 나아간다.
일단 기본적인 스토리를 옮겨적은 뒤에는 그 스토리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 수정 작업을 하면서 여러분 자신의 결론을 집어넣을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각각의 이야기를 여러분만의 독특한 작품으로 만들어주는 비전을 작품속에서 빼앗는 일이다.
이제 작품을 수정하는 일에 대하여 이야기해보자
초고를 완성한 뒤에도 조심하는 것이 좋다. 방금 눈이 내린 들판처럼 작품 속에 오직 자신의 발자국만 찍혀 있을 때 좀 더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 6주의 회복기 - 남의 작품을 읽는 듯한 느낌도 있을 것이다 - 자기가 사랑하는 것들을 죽이는 일보다 남이 사랑하는 것들을 죽이는 일이 훨씬 더 쉬운 법이다.
비평가 겸 최초의 독자 - 날카로운 비평가 - 내가 사람들 앞에 나서기 전에 지퍼가 열렸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어 고마울 뿐이다.
배경 스토리에 관하여 명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a) 과거는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 (b) 대개는 별로 흥미롭지 않다는 것이다.
자료조사는 전문화된 형태의 배경 스토리라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다만 약간의 진실성을 첨가하는 것뿐이다. 스파게티 소스를 더욱 맛있게 만들기 위해 양념을 집어넣는 것처럼 말이다. 여러분이 쓰고 있는 것은 연구 논문이 아니라 소설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언제나 스토리가 우선이다.
여러분이 풋내기 작가이고 또한 단편 소설을 쓰고 있다면 '군소 잡지'에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혹시 장편 소설을 쓰고 있거나 이미 완성했다면 창작 관련 잡지나 <작가 시장>에서 저작권 대리인들의 명단을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인생론: 후기를 대신하여
궁극적으로 글쓰기란 작품을 읽는 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아울러 작가 자신의 삶도 풍요롭게 해준다. 글쓰기의 목적은 살아남고 이겨내고 일어서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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