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방] - 생각의 속임수 - 글을 열며 나는 누구인가?
[독후방] - 생각의 속임수 - 제1장. 나는 왜 고독한가
[독후방] - 생각의 속임수 - 2장 나는 왜 착각하는가
(권택영, 글항아리, 2018)
3장 나는 왜 후회하는가
경험하는 시간에서 현재란 없다. 현재란 지각하는 순간 이미 지나갔다. 울기에 슬픈 것과 마찬가지로 뇌에서 감각의 뉴런들에게는이미 불이 반짝 들어왔고 다음 순간 의식이 작동하기에 지금이라고 느낀 순간 이미 그 시간은 지난 것이다.
삶은 아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고 미래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간은 영원한 현재일 뿐이다.
사실은 늘 거짓말을 하고 살면서 진실이라고 믿는 의식의 오만함을 깨우치기 위해 미학은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통해 진실에 접근한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죄인임을 알았을 때 비탄에 빠져 눈을 찌르고 아내이자 어머니인 왕비는 자살한다. 비극이다. 그런데 이 놀라운 반전에 독자는 감탄하고 연민을 느끼며 박수를 보낸다. 위대한 왕의 추락은 비극이지만 삶의 진실을 엿보게 해주기 때문이다.
시간은 언제나 뒷모습만 보여주기 때문에 깨달음은 때늦게 찾아온다. 우리는 이미 지난 것, 돌이킬 수 없는 것에 대해서만 후회한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일상에서 의식은 주인 행세를 한다. 그래서 감각은 자신이 먼저 태어난 형인데 억울하다. 기억의 흔적이 없으면 의식은 회상하거나 인지하는데 무능력하다. 그러나 나중에 진화했다는 이유만으로 의식은 혼자 도맡아 처리하는 양 주인 행세를 한다. 감각의 흔적들은 적절한 때를 엿본다. 의식이 마음 놓고 오만하게 행동하도록 잠시 내버려둔다. 그리고 어느 순간 뒤통수를 한 대 치고는 그 선택이 실패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짐승의 출현이다. 아, 이게 진실이었구나. 내가 잘못 살았구나. 그러나 그런 깨달음은 끝이 아니다. 후회에 따른 인식의 전환은 생각이 계속 흐르기 때문에 얼마든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지금 후회할지라도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매이지 않고 계속 최선을 다해 살면 언젠가 현재의 후회가 의외의 선물로 찾아온다. 물론 그때에는 또 다른 선택에 대한 후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대상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한다. 경험한 만큼의 눈으로 볼 뿐이다.
경험하라. 삶의 넓고 깊고 오묘한 진실을 느끼기 위해 두려움 없이 경험하라. 고통스러운 경험조차 없는 것보다 낫다. 경험과 실수 없이 삶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어릴 때는 모든 것이 새롭다. 기다림은 길고 지루하며 불안감은 생생하고 그 기억이 강렬하다. 다채로운 여행의 기억처럼 놀랍고 다양한 사건의 연속, 낯선 경험들이 각인되어 자세히 떠오른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이런 기대와 흥분은 일상이 되어 자동으로 사라지며 거의 각인되지 않는다.
어린 시절의 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모든 경험이 새롭고 기대에 가득 찬다. 그리고 하나하나 빠짐없이 뇌의 흔적들에 새겨지고 저장된다. 그러므로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 반면 살아갈수록 이미 경험한 것, 새겨진 것들이 반복되므로 무의식중에 지나간다. 우리 몸의 신체가 느리고 노쇠해가므로 웬만한 것은 의식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지나간다. 경험을 저장하는 기능이나 인출하는 기능도 노쇠하여 망각은 늘어나고 저장하는 기능은 약해진다.
경험이 덜 축척된 젊은 시절에는 모든 일이 기대감을 불러 일으키며 호기심이 강하다. 마음이 성급해지고 시간을 앞질러 나간다. 따라서 하루가 길게 느껴진다. 드라이스마에 따르면 경험을 저축하는 양과 질의 절정기는 대략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전반이다.
나이 들어도 주변의 일에 놀라고 호기심을 느끼며 특이한 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을 가는 모험심을 갖는 게 시간을 늘리는 길이다.
그런데 나는 혹시 그런 적이 없었던가? 돌이킬 수 없는 가슴 아픈 후회는 없었던가. 있다. 지금은 치매로 대전의 어느 요양소에 계신 어머니를 그 전에 더 자주 찾아뵙지 못했던 것. 아버지를 잃고 혼자 산 긴 시간이 어머니에게 얼마나 두렵고 외로웠을까 미처 느끼지 못했던 나의 후회, 그 긴 시간에 나는 예순아홉에 뇌종양으로 세상을 뜬 아버지만을 그리워하지 않았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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