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타인에게 휘둘리는가
(야마모토 케이 지음, 최주연 옮김? 책읽어주는 남자, 2024)
제 3장 과시 혹은 자랑에 대해서
타인에게 자신의 행복과 성공을 과시하고 타인의 질투를 불러일으킬 때 욕망은 비로소 채워진다. 욕망에는 타자의 존재가 불가결하다.
상대의 자화자찬은 듣는 사람까지 그것에 거들도록 강요하므로 불쾌감을 유발한다고 플루타르코스는 지적한다.
현시적 소비는 '경쟁의식' 즉, '자신과 동류로 보이는 타인을 웃돌고 싶다는 마음'이 동기로 작용한다. 그런데 그런 경쟁에 과연 끝이 있을까? 베블런에 따르면, 재산의 축적을 경쟁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타인과의 비교에 근거한 평판을 얻기 위해서이므로 이런 경쟁에 최종 도달점은 없다.
'만인이 만인에게 과시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새해 다짐부터 이직 상황, 보조금이며 수상 실적, 회전 초밥 가게에서 인생을 건 기행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쉴 새 없이 과시로 내몰린다. 무엇이 이토록 우리를 과시로 몰아넣는 것일까?
제 4장 질투•정의•공산주의
정의의 탈을 쓴 질투심
인생이 잘 풀리지 않는 것은 '어쩌다' 또는 '우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자존심을 유지하며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만약 그것이 능력에 근거한 필연적인 것으로 여겨진다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은 롤스의 의도와는 반대로 지독한 고통과 열등감을 동반하지 않을까?
아무리 성공해도, 풍족해져도 자신의 상황과는 관계없이 이웃의 성공과 행복이 눈에 거슬려서 어쩔 줄 모르는 불합리하고 변명이 통하지 않는 감정이다
그런 불미스러운 감정이기 때문에 더욱 진지하게 고려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자기 자신의 불리함을 푸념하기보다 주저 없이 타인의 우위를 고발하는 쪽을 선택한다. 그것이 자신의 생존 조건을 조금도 바꾸지 않더라도 옆 사람이 확실하게 유리한 조건을 획득한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제 5장 질투와 민주주의
근대 민주주의의 탄생은 우월 욕망이 대등 욕망으로 대체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소수의 엘리트만 인정하던 사회'가 '누구나 평등하게 타고났다고 인정하는 사회'로 바뀐 것이다.
수평화 끝에 우리의 질투심은 어디로 갈까? 현대 민주 사회에 사람들의 질투심은 사라졌을까? 물론 그렇지 않다. 예전엔 영웅이나 절대적 권위처럼 명확하게 우월한 자에게 질투가 향해졌다면, 오히려 현재는 대등한 이웃 간의 질투로 변형되어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에필로그 - 질투 마주하기
언제나 우리의 질투는 우리가 부러워하는 사람들의 행복보다 오래 계속된다.
- 라 로슈푸코<잠언집>
질투는 그야말로 성가신 감정이라 질투를 하는 것도 질투를 받는 것도 최대한 피하며 사는 것이 상책이다. 마음가짐 하나로 질투심이 사라져준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항간의 자기계발서들은 '지금 그대로가 좋다', '타인과의 비교를 멈춰라'는 식으로 질투에 대처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런 종류의 제언은 현실의 질투에서 눈을 돌려 질투를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질투심을 깨끗하게 없애는 일이 가능한 것처럼 선전하여 마치 일부의 사람만 어쩌다 가끔 걸리는 열병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이런 생각은 머지않아 예기치 못한 화를 불러올 수 있다.
질투에 무언가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이 감정이 '나는 누구인가'를 가르쳐준다는 데 있을 것이다.
내가 누구의 무엇에 질투하는지, 왜 그 사람에게 질투를 느끼는지 들여다보면 내가 어떤 인간인지, 나는 누구와 자신을 비교하는지, 나는 어떤 준거집단 안에서 나를 찾고 있는지가 보인다. 확실히 그것이 객관적인 자기상은 아닐지 몰라도, 때로는 스스로도 알아채지 못하는 또 하나의 자신을 보여주기도 한다.
질투의 에너지가 반드시 사회를 추락시키는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건 아니다. 부정이나 불평등을 고발하는 등 세상을 바로잡기 위한 에너지로 발산되는 일도 원리상 있을 수 있다(이것은 베이컨이 공적 질투에서 인정한 효용이기도 하다) 이것이야말로 질투 없는 사회를 논할 때 간과되는 점이다.
능력주의란 이른바 능력에 따른 지배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능력이나 성적에 따라 격차를 용인하게 만드는 사고방식이다.
마이클 센델에 따르면, 능력주의는 불평등이나 격차를 도덕적으로 정당화하여 소외된 사람들에게 굴욕감을 안겨준다. 이런 사고방식이 지나치면, 현대 미국 사회가 그러하듯 엘리트와 서민 사이에 커다란 분단이 발생한다.
마이클 센델의 능력주의 비판 및 그가 제시하는 해결책, 예를 들어 엘리트의 교만을 교정하고 노동의 존엄을 되돌리는 것은 확실히 중요한 제언이라 할 만한다.
롤스 비판자이자 자유지상주의 사상가로 알려진 로버트 노직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회에 자존감 격차가 만연하지 않도록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모든 차원에 공통의 가치를 매기지 않고 그 대신 다양한 차원에서 다채로운 가치 리스트를 가지는 것이다. 각자 자신이 꽤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차원에서 타인도 일부는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해 주는 것을 찾아내어 특이한 것으로서가 아니라 호의적인 평가를 할 기회를 늘리는 것이다.'
질투의 출구
- 비교를 멈추는 일
- 비교를 멈출 수 없다면, 끝까지 파고들어 철저하게 비교하는 것이다.한 부분에만 특화된 어중간한 비교가 질투심을 부풀리는 것은 아닐까? 부러워 보이는 뛰어난 사람을 꼼꼼하게 관찰해 보면 생각지 못했던 일면이 보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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