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타인에게 휘둘리는가
(야마모토 케이 지음, 최주연 옮김? 책읽어주는 남자, 2024)
프롤로그 - 질투의 감옥에서 벗어나기
질투는 자신을 괴롭히는 데다 꼴사나운 감정이다. 자신의 질투를 타인에게 들키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슴 한구석이 질투심에 매료되어 휩쓸릴 때가 있다.
제 1장 질투란 무엇인가
나의 벗이 성공할 때마다
내 안의 무언가가 조금씩 죽어간다.
- 고어 비탈
영국의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이 질투를 '모든 감정 중에서 가장 반사회적이고 가장 꺼림직한 감정'이라 표현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질투와 동경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양쪽 다 타인이 가진 것이 욕망의 원인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그러나 동경은 자신이 가지지 않은 재능이나 용모 등을 가진 누군가에게 여러 감정을 느끼며 자기도 그것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한편, 질투는 타인이 가지고 있는 것을 자신이 갖지 못한 상황에 괴로워하고 타인이 그것을 잃어버리기를 갈망한다는 데에 특징이 있다.
누군가를 질투한다는 것은 찜찜하고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는 일이므로 자신의 질투심을 스스로도 좀처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내면의 질투심은 보통 은닉된다. 누구나 질투에 휩싸인 자신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자신의 질투심을 타인에게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타인의 성공에 고통을 느낀다는 점은 질투와 의분이 비슷하지만 두 감정은 엄연히 다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질투는 '심적 혼란을 동반하는 고통이며 타인의 행운 때문이긴 하지만, 그 행운은 그것을 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자의 행운이 아니라 자신과 대등한 자의 행운'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어떤 인물이 걸맞지 않은 성공이나 행운을 얻으면 누구나 의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질투는 다르다. 질투의 대상은 자신과 비교 가능한 자로 한정된다. 게다가 그 인물에게 걸맞은 행운이라 할지라도 질투자는 그것을 참을 수가 없다.
인간은 끊임없이 위아래를 보며 자신의 위치를 가늠하는 슬픈 생명체이다.
[나이 든 사람은 젊은이를, 자신이 큰 대가를 치르고 얻은 것을 적은 대가로 얻은 자를 질투한다. 자신이 힘겹게 간신히 획득하거나 결국 얻지 못한 것은 손쉽게 얻은 자를 질투한다](아리스토텔레스 질투의 정리)
상대적 박탈감과 질투
절대량이 부족하지는 않아도 타인과 비교하여 자신이 적절한 보수를 받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면 불공평하다고 느낀다.
jeslousy는 경쟁자가 자신의 것을 빼앗으려 한다고 생각하고,
envy는 자신이 바라는 것을 경쟁자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르상티망은 도저히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이 있을 때 그 가치를 부정함으로써, 채워지지 않는 욕구를 달래는 심리작용이라 할 수 있다.
샤덴프로이데 - 남의 불행은 나의 기쁨
타인의 불행에서 희열을 느끼는 샤덴프로이데는 부끄러워해야 할 감정이다.
닫힌 사회에서는 가진 자가 부와 행운을 보란 듯이 과시해서는 안 된다. 타인의 질투가 자신의 파멸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질투를 피하는 네 가지 전략
- 은닉, 부인, 작은 선물, 공유
질투의 공포
- 타인의 질투를 받는 일
- 자신의 질투심을 타인이 알게 되는 공포
- 자신의 질투심을 스스로 인정하는 공포
질투의 경제학
- 세금은 언뜻 감정과는 거리가 먼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질투의 경제학'이라 불려 마땅한 문제가 숨겨져 있다. 세금을 걷는 방식은 사람들의 질투심과 아주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하이에크에 따르면, 누진세는 가난한 자가 성공한 자의 발목을 잡아당기며 자신의 질투심을 위로하는 비열한 조세 제도이다. 게다가 누진세라는 방식으로 , 다수자는 소수자에게 한도 없는 부담을 요구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런 제도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침해'하므로 다수자의 독재와 다름없다고 하이에크는 지적한다.
제 2장 질투의 사상사
질투에는 휴일이 없다
- 프랜시스 베이컨<수필집>
쾌락과 고통의 혼합 - 플라톤
질투는 확실히 영혼의 고통이며 이웃이 손해를 볼 때 질투는 쾌락을 유발하기도 한다.
질투자의 전략 분석 - 이소크라테스
질투자는 무언가 구실을 붙여서 칭찬을 아끼거나 일부러 다른 것을 요란하게 칭찬한다. 왜냐하면 '실천적 언사를 모함하면 자신의 명예가 높아진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이소크라테스는 엘리트를 향한 대중의 질투심에 부정적이었는데 대중이 가지는 평등주의적 질투는 우월한 자의 파멸을 바라는 악의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질투와 증오 - 플루타르코스
상대가 행복해지든 불행해지든 증오는 그 본성상 사라지지 않으나, 질투는 상대가 어느 쪽으로든 과잉 상태에 이르면 약해지기 마련이라고 플루타르코스는 논한다.
질투와 사랑 - 토마스 아퀴나스
사람은 자기와 비슷한 상대를 질투하며 자신과 완전히 동떨어진 상대를 질투하는 일은 없다. 평민이 왕을 질투하거나 왕이 평민을 질투하는 일이 없는 것과 같다.
질투가 타인의 선에 대한 고통이라면, 사랑은 같은 것을 보며 기뻐하는 감정이다.
질투의 효용 - 프랜시스 베이컨
왕은 왕에게서만 질투를 받는다
자기의 행운을 과시하는 자가 질투를 부르기 쉬운 건 분명하다. 그러나 거침없이 행운을 보여주는 것보다 음흉하게 살짝 냄새를 풍기는 편이 질투를 사기 쉽다는 지적이 흥미롭다. 슈퍼리치 도널드 트럼프가 백인 노동자계급의 지지를 받고 힐러리 클린턴이 그렇지 못한 데는 이런 이유가 있는지도 모른다.
사적 질투에는 아무 장점이 없지만 공적 질투에는 어느 정도 도움 되는 점이 있다. 공적 질투는 지나치게 강대해진 자가 있으면 그의 명성을 실추시키는 도편추방제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질투는 강대한 자를 구속하는 고삐이기도 하다.
인간증오의 악덕 - 임마누엘 칸트
질투, 배은망덕, 샤덴프로이데를 혐오해야 할 하나의 그룹으로 묶는다. 이것들은 전부 공연하게 드러나지 않으며 은밀하고 비열하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교양인의 질투 - 버나드 맨더빌
맨더빌에 따르면, 애초에 인간은 자기 자신만 사랑하며 이웃을 나쁘게 보는 생물이다.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웃이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한탄하며 슬퍼한다. 그런 한탄을 위로하는 건 이웃을 향한 분노뿐이다.
맨더빌에 따르면, 현명한 자가 다른 사람들만큼 질투하지 않는 이유는 멍청하고 어리석은 자보다 서슴없이 자신을 찬미하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자신의 가치를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 이른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아무리 성공해도 또는 상대보다 우위에 있어도 끊임없이 질투심에 휘둘릴 수 있다는 뜻이다.
열위자를 향한 질투 - 데이비드 흄
자신을 열위자와 비교하는 사람은 이 비교에서 쾌락을 느낀다. 그리고 열위자의 지위가 상승함에 따라 우위자와의 차이가 감소하면 쾌락의 절대량만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과거 상황과 새로운 비교가 이루어져 진정한 고통이 발생하는 것이다.
인간 질투 기원론 - 장 자크 루소
자존심과 자기애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이 두 가지 정념은 그 성질부터 효용까지 완전히 다르다. 자기애는 모든 동물을 자기 보존에 힘쓰게 하는 자연적 감정이다. 자기애는 인간이 이성을 따르도록 유도하고, 동정심에 의해 변형되어 인간애와 미덕을 불러일으킨다. 자존심은 사회 안에서 생겨난 상대적, 인위적 감정에 지나지 않는다. 자존심은 그 어떤 타인보다 자신을 가장 존중하게 하여 사람들 사이에서 행해지는 모든 악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명예의 진정한 원천이다.
질투의 팀플레이 - 쇼펜하우어
새로운 재능에 대한 자기보신적 묵살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어느 업체나 흔하다. 이런 식의 팀플레이는 오래된 것이 새로운 것에 밀려날 수도 있다는 불안에서 비롯된 조직적 방어로 이해할 수 있다.
경쟁과 질투 - 프리드리히 니체
그리스인의 생활에서 경쟁을 빼버리면 호메로스 이전의 심연, 즉 증오와 섬멸의 욕망 같은 야만성의 심연을 들엳보게 될 것이라고 니체는 말한다. 그리스인에게 질투는 꺼림칙한 감정이 아니라 경쟁을 활성화하는 존재였다.
'비질투 정치'의 가능성 - 마사 누스바움
모든 인간이 권리로서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질투를 느끼지 않으므로 중요한 경제적 재화의 일부를 권리의 카테고리로 이동시킴으로써 질투는 어느 정도 약해진다.
진정한 악덕 - 후쿠자와 유기치
한 가지, 그 성질 자체가 완전히 부덕으로 치우쳐서 장소와 방향도 가리지 않고 악하디악한 것이 원망이다. 원망이 음험한 이유는, 나서서 취하지 않고 타인의 모습을 보며 불평을 품고 자신을 돌보지는 않고 타인에게 많은 것을 바라는 데 있다. 그 불평을 달래는 방법은 자신이 이익을 얻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손해 보는 것이다.
질투는 평균을 목표한다 - 미키 기요시
질투 상대는 주로 자기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자, 자기보다 행복한 상태에 있는 자이지만 그 차이는 절대적이지 않으며 손이 닿을 법한 상대여야 한다. 그러나 질투자는 상대가 있는 위치로 자기가 올라가려고는 하지 않고 오히려 '본질적으로 평균을 향한다'고 미키는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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