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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방

인생이 묻고, 톨스토이가 답하다 -1/2

by 행복배터리 2024.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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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빛이 되어준 톨스토이의 말
(이인희 지음, 홍익출판사, 2019)


1. 사랑, 지나고 나면 마음의 사치
_안나 카레리나


행복한 가정은 모두 다 서로 비슷한 것이고,
불행한 가정은 어느 경우나 그 불행의 상태가 다른 법이다.

- 이 문장에서 톨스토이가 말하려고 했던 것은, 결혼생활이 행복해 지려면 수많은 요소들이 성공적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서로 성적 매력을 느껴야 하고 돈, 자녀 교육, 종교, 인척 등등의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합의할 수 있어야 한다. 행복에 필요한 이 중요한 요소들 중에서 어느 한 가지만 어긋난다면 그 나머지 요소들이 모두 성립되더라도 그 결혼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 제레드 다이아몬드, <총,균,쇠>에서

다시, 브론스키를 위한 변명 : 열흘 붉은 꽃이 없다

그는 꽃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그만 그것을
따 버린 나머지 쓸모가 없게 만들어 버린 사람이
이젠 이전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없어서
시들어 버린 꽃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과
같은 심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 앞서 인용한 구절 역시 한참 사랑에 빠져 있던 브론스키가 안나에게서 빛나는 아름다움 대신 차츰 시들며 초라해져 가는 삭막함을 발견하는 장면이다.

안나는 처음 만났을 때의 그녀와는 전혀 딴사람처럼 되어 있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악화되어 있었다. 몸 전체가 옆으로 넓게 퍼지고, 그 여배우에 대해서 애기하거나 할 때면 심술궂은 표정을 지어 그 얼굴의 생김새가 비뚤어졌다. (...) 그녀에게서 사랑을 느낄 수가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지금, 도리어 그녀와의 관계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을 느끼고 있었다.

- 그렇다면 이때로부터 몇 달 전, 브론스키가 안나에게 첫눈에 반하는 장면, 그리하여 거부할 수 없는 사랑과 어쩔 수 없는 비극이 동시에 시작되는 장면을 다시 펼쳐 보자. 책장을 한참 앞으로 돌려, 오빠의 집이 있는 모스크바의 기차역에 막 내려서는 안나를 브론스키가 흘끗 쳐다보는 장면이다.

그는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하고 차간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으나 어찌된 일인지 다시 한 번 이 귀부인을 돌아보고 싶은 절실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상대방이 대단한 미인이었기 때문도 아니요, 그 모습 전체에 감돌고 있는 섬세한 느낌이나 예의 바른 우아함 때문도 아니며, 상대방이 곁을 지나칠 때에 그 사랑스러운 표정 속에 일종의 독특한, 감미롭고 다정한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 이 한순간의 응시 속에서 브론스키는 상대방의 얼굴에 약동하고 있는 소극적인 것 같으면서도 생기가 넘친 표정을 느꼈는데, 그것은 그녀의 반짝이는 눈빛과, 그 붉은 입술을 약간 일그러지게 하는 희미한 미소 사이에 감돌고 있는 것이었다.


억울한 일을 당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는 내가 그들보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다. 보란 듯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잊을 만한 것이라면 빨리 잊고 자신의 삶에 집중하는 것이다. 억울함도 불편부당한 일이겠지만, 억울한 감정을 품고 사는 일 역시 배로 힘겨운 일이다. 때에 따라선 온몸을 던져 싸워야 할 일도 생기겠지만, 그럼에도 모든 일의 최고의 복수는 그 불의한 자들보다 더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2.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_단편 우화집


다시 내려가 산모의 혼을 거두어라. 그러면 세 가지 말을 알게 되리라. 즉 사람의 내부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그것을 알게 되면 하늘나라로 돌아올 수 있으리라.

이 모든 질문의 공통된 정답은 '사랑'이다. 사람의 내부에 있는 것도,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답도 '사랑'이다. 두 번째 질문인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에 대한 대답은 조금 모호한데, 사람은 언제 죽게 될지 모른다는, 그런 것 정도가 된다.

3. 죽음은 어째서 늘 이기는가?_이반 일리치의 죽음


'그것은 내가 아니라 이반 일리치한테 일어난 일이야. 나한테는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 그럴 리가 없어.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공연히 기분만 우울해질 뿐이야. 슈바르츠의 표정이 분명히 보여주었듯이, 우울증에 굴복하면 안 돼.'
이반 일리치의 사망 소식을 접하게 된 신사들은 하나같이 머릿속으로,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 자신과 동료들의 자리 이동이나 승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분석하고 계산하기에 바빴다.
'요컨대, 이반 일리치가 죽었다고 해서 우리가 오늘밤 유쾌하게 지내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다는 말일세.'


우리 마음은 어느덧 망자에 대한 슬픔과 연민에서 이질감과 경계심, 귀찮음과 불결함 쪽으로 옮겨 가고 있다.

우리는 살아가는 순간순간, 우리가 몸 바쳐 달려드는 일이 혹시 헛되고 덧없는 일이 아닐까 고심하곤 한다. 인생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고 살기 때문이기도 하다. 많은 철학자, 작가들이 말하듯 인생에 별다른 의미란 게 없고 그냥 살아지는 것뿐인데, 우리는 인생에 무슨 큰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경쟁심으로 어떤 아름다운 것도 만들 수 없고 오만한 마음으로는 어떤 고귀한 것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라.
- 존 러스킨의 말, <인생이란 무엇인가>에서


4. 결혼은 미친 짓이다?
_크로이체르 소나타


포즈드니셰프의 말처럼 아름다운 사람이 전적으로 착하기만 할 거라는 환상쯤은 다채로워진 영화나 드라마 속 악인 캐릭터를 통해서 많이 깨졌다고 하자.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미를 선으로 보고, 진으로 보는 오류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 가족, 내 편, 내가 지지하는 스포츠 팀과 정당, 내 민족이 무조건 옳고 정의로우며 잘할 것이라는 환상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착한 사람이 결국 천국에 가리라는 믿음, 정의가 늘 승리하게 되리라는 환상은 과연 맞는 것일까? 환경 파괴 등 위험 요소로 지구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는데 인간이 결국 생존을 위한 답을 찾을 것이라는 낙관론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당장 아무런 대책이나 행동의 변화 없이 말이다. 진실은 대개 듣기 불편할 것이라고들 한다. 진실이 전부 아름답거나 편할 수는 없다고. 그런데 우리는 종종 출처 불명의 낙관과 근거 없는 믿음에 빠지기 일쑤다.

문은 닫혀 있었고, 규칙적인 아르페지오와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무슨 이야기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말이 들리지 않도록 일부러 피아노를 치는 게 분명했습니다. 어쩌면 키스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럴 수가! 속에서 뭔가 울컥 치밀어 올라왔습니다. 저는 그때 제 내부에 숨어 있던 짐승이 살아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 '어떻게 해야 하지? 들어가 볼까? 하지만 내가 무슨 짓을 벌일지 겁나!'
- 도덕은 도덕적 주인공들의 잔소리를 통해서가 아니라 오만하고 이기적이며 결함 많은 인간들의 몰락과 깨달음을 통해 더 효과적으로 형상화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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