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독립 만--세 프로젝트
( 이병준 지음, 피톤치드, 2020)
제1부 왕이 된 자녀들, 왜?
왕이 되어 분노하는 아이들
- 자기통제력 부족에 의한 분노
너무 과도한 존중, 과도한 아이 중심 교육이 낳은 결과이다. 참을 땐 참아야 하고 기다릴 땐 기다려야 한다. 잘하는 것은 보상을 통해 강화하고, 잘못한 것은 벌을 통해서 교정한다.
- 피해자증후군에 의한 분노
감정은 수용하되 행동에 대해선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데, 과도한 아이 중심 교육에서는 감정의 수용에만 치우쳐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들은 마음껏 화내는 것을 비롯해서 모든 감정을 아무런 여과 없이 표현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 형평강박에 의한 분노
자기의 지위와 부모의 지위를 동일 선상에 놓고 있다. 이렇게 저울의 형평처럼 부모와 교사를 비롯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와 동일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현상을 '형평강박'이라 한다.
- 심리적 고아가 된 것에 분노
아이에겐 밖에서 겪은 아픔과 절망, 억울함과 분노를 토로할 곳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그것을 받아주어야 하는데 그 역할을 가장 잘 해야 하는 사람이 엄마다. 그런데 엄마가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해주면 아이는 심리적 고아가 되어 엄마를 향한 마음 문을 닫아버리거나 메가톤급 분노를 폭발시킨다.
엄마는 불안의 진원지가 어디인지를 살펴야 하고 아이를 믿어 주고 편이 되어 주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 기회박탈에 대한 분노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공부라는 방식으로만 자신의 존재를 증명받는 사회구조 속에 매몰된 채 살아왔다. 공부도 이미 승자 독식이요. 그들만의 파티요, 쉽게 끼지 못하는 영역이요, 현대판 카스트 제도의 영역이다. 그로 인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더 크다.
이런 아이들의 분노를 해소시키는 방법은 위로와 공감이 아니라 유능한 존재, 탁월한 존재로 만들어 무대 위로 보내 주는 것이다. 무대에 서는 사람은 행복하다. 나의 능력을 발휘하는 공간, 나를 기대했던 사람들이 박수와 환호를 보내고 눈물을 흘리면서 감동하며 행복해 한다면 그것을 보는 나는 더 큰 행복을 느낀다.
- 죄책감을 느끼는 센서가 없어 분노
왕이 된 자녀들은 생물학적으로는 초등 고학년, 중고생인데 심리 나이가 영아기에 고착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영아기의 발달 특성은 자기중심성이라 나밖에 모르고 모든 사건을 자기중심적으로만 해석하고 행동한다.
- 곱하기 계산법에 의한 분노
자녀들의 분노는 '주관적 사실'에 근거한다. 즉 자기 판단에 의한 분노지 모든 사람이 인정할 만한 분노가 아니다. '주관적 사실'과 '객관적 사실'을 구분하려면 '내 문제'와 '너의 문제'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고 그러러면 사건을 객관화할 수 있는냉정한 이성과 통합적 사고가 필요하다. 그런데 요즘 자녀들은 생각의 용량이 너무 적어 냉정한 이성을 작동시키는 기능이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통합적 사고 대신 단편적 사고, 쾌락적 사고만 한다. 그래서 자기 생각에 '잘못'이면 그것을 명백한 '객관적 사실'로 처리한다.
이 때문에 요즘 자녀들은 가감법(장점+70, 단점-30)이 아닌 곱하기 계산법(장점+70×단점-30)을 한다.
- 어른들로부터 대물림된 분노
유교 문화권에서의 여성들은 가부장적 권위와 강요된 역할을 참아내느라 홧병에 걸렸었다.
남자들은 죽어라 일만하고 관계의 젬병이가 되는 바람에 고생만 하고 대접을 받지 못하는 억울함에 대한 분노가 차 있다.
이제는 무기력에까지 빠진 아이들
- 체격은 좋아졌지만 체력은 바닥
신체적 체력 약화도 문제지만 정신적 체력 약화도 문제다. 제도화된 교육은 '아이가 원하는 대로'의 철학을 깔고 있기 때문에 부모도 아이가 원하지 않으면 시키지 않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고 아이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하지 않아도 돼'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사람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다. 하기 싫은 일도 할 때는 해야 하고, 하기 싫었던 일이지만 하다 보니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게 되고 그 때부터 성과를 내기 시작하는 일도 있다. 그러다 그것이 평생 직업이 되는 사례도 얼마든지 있다. 천직이란 개인의 입맛에 딱딱 맞게 제공되는 그런 일자리란 뜻이 아니라 하다 보니 몸에 익은 그 일을 말한다.
- 자살을 유발하는 무기력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안 해도 돼'로 인해 아무것도 안 하다 보니 정말 아무것도 아니 존재, 무능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무기력은 다른 말로 무능력이다.
나는 싸가지 코칭을 시작하면 부모들 생각에 아이에게 마땅히 해 줄 말이라고 판단되면 너무 평범하고 당연한 말이라도 반복해서 말하라고 한다. 정작 아이들은 들은 적이 없는 것도 많고 어차피 교육은 반복이기 때문이다. 당장은 듣지 않아도 임계점에 도달하면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인성교육의 목표점은 단순히 예의바른 사람을 만드는 차원이 아니라 삶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는 활력 충만한 사람으로 만드는 일이다.
- 아이들은 왜 무기력에 빠졌을까?
첫째, 좌절의 연속을 경험했을 것이다.
둘째, 사회적 환경 때문이다. 승자독식, 획일화, 성과위주의 사회 분위기...
셋째, 성공해야 할 이유를 모르기 때문이다.
워렌 버핏은 "열정은 성공의 열쇠, 성공의 완성은 나눔"이라고 했다.
- 무기력 때문에 좀비가 된 아이들
힐러리를 강하게 키웠던 것은 그녀의 어머니였다. 문제에 눌려 질식하는 아이가 아니라 문제와 싸워 도리어 자신의 존재가치를 드러내는 아이로 키웠던 것이다.
- 과도한 자존감 존중이 부른 무기력
요즘 자녀들의 문제는 절대 자존감 문제가 아니니 헛다리짚지 말라. 자존감이 문제가 아니라 왕처럼 살아오느라 아무것도 안 해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렸고 무식하고 무능한 존재로 전락해 무대에 올라설 수 없는 존재가 된 바람에 자기효능감을 갖지 못한 것이 문제다.
된서리 맞은 아이들
- 최고의 즐거움을 빼앗긴 된서리
- 현대판 카스트 제도의 된서리
- 대중문화의 된서리
- 교육기관의 된서리
- 교사 비율의 된서리
- 수준 미달 교사의 된서리
- 사육장이 된 학교의 된서리
- 근대화된 학교의 된서리
제도화된 교육이 시행되는 학교는 처음부터 사육장이었다. 교육다운 교육, 생각하는 교육이 아니라 '기능하는 인간', '말 잘 듣는 인간'을 만들어내면 되는 곳이었다.
- 된서리 맞은 호기심과 창의성
호기심과 주도성이 있는 아이, 어떤 일에 인생 전체를 걸 만한 관심과 열정이 있고 그것을 위해서 주도적으로 행동하는 자녀를 둔 부모는 가장 큰 복을 받은 사람들이다.
인간은 더더욱 각기 다른 개성의 소유자로서 자신만의 색깔로 살아가야 행복하다. 그런데 제도화, 규격화된 교육 현장인 학교에서 강압에 의해 개성과 자유를 말살당한 채 부모의 욕망만을 강요당하고 속박당한 아이들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
자기 일도 선택 못하는 아이들
- 과도한 선택 기회가 초래한 결정장애
- 2만 불의 저주에 따른 결정장애
마치 물고기가 물속에 살면서 물을 못 느끼듯 풍요로움 속에서만 살았던 아이들은 풍요가 풍요인줄을 모른다. 도리어 상대적 박탈감에 눌려 심리적 가난함을 느끼는 불쌍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물속에 사는 물고기가 목말라 죽었다는 이야기가 요즘 사람들 이야기다.
- 마마보이는 결정장애자
녀(여)전히 왕으로 남고 싶은 아이들
- 부모도 힘없으면 당한다
- 아동권리현장은 있는데 왜 아동의무현장은 없나?
- 의무는 NO 권리만 Yes
- 아이들은 어떻게 왕이 되었을까?
부모가 부모로서 권위를 행사하고 아이가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적절히 훈육할 때 비로소 아이는 올바르게 자랄 수 있다.
들을 줄 몰라 성장을 멈춘 아이들
- 총기가 없는 아이들
학교 교육을 통한 지식 체계는 갖고 있지만 지혜라는 개념은 잘 모른다. 사고의 지평을 넓히지 않고 지혜자가 될 수는 없다. 보통 사람이 하나를 생각할 때 지혜로운 사람은 여러 상황을 동시에 생각하고 드러나지 않는 부분까지 볼 수 있는 혜안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미래로 갈수록 더더욱 지혜자(현자)가 필요한데 이러한 사고력은 추상적 사고의 단계에서 가능하다.
지혜를 가지려면 잘 들어야 한다. 듣는 사람은 겸손하다. 자녀도 부모의 아래에 있어야 부모 말을 듣고 순종한다. 그런데 너무 과한 존중, 어릴 때부터 왕처럼 받들어 모신 자녀는 부모보다 수직체계의 꼭대기에 있기 때문에 부모는 물론 누구 말도 듣지 않는다.
부모 말을 듣는 자녀로 키우려면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Yes, But 화법'을 쓰게 해야 한다.
- 고립이란 방어기제에 묶인 아이들
관계 형성에 실패하고 혼자만의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이것이 고립이란 방어기제다. 삶에 대한 관심과 의욕도 없고 왜 사는 지에 대한 철학적 물음 같은 것도 없다. 때론 덧없고 무의미한 느낌때문에 죽고 싶은 생각에 사로잡힌다.
- 철회라는 방어기제에 묶인 아이들
인간관계로 인해 발생하는 복잡한 상황들을 맞닥뜨리기 싫어서 그런 상황 자체를 만들려 하지 않는다. 그러려면 혼자 살아야 하니 혼자만의 공간으로 도피하면서 그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려고 한다. 이것이 철회란 방어기제다. 요구했다가 거절당하면 큰 상처를 받기 때문에 요구하지 않음으로써 작은 상처를 선택하는 메커니즘이다.
- 투사라는 방어기제에 묶인 아이들
자신은 그 무엇도 안 하면서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지 않고 주변인과 외부환경으로 책임을 돌리는 현상이다.
왜소한 정신적 체격의 아이들
- 형평강박과 피해자증후군은 심리적 고착
현상
자기중심적 사고에 고착되어 있는 현상
-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피해자증후군
- 아이들이 말하는 상처는 주관적 상처다
아이가 말하는 상처는 결국 아이가 '자기'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을 보여준다. 객관적이라는 말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그러러면 내 문제와 상대의 문제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하고 자기 문제를 시인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자기에 갇힌 사람에겐 '잘못'이란 개념이 없으므로 자기 잘못도 타인에 의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이는 명백히 자기가 잘못한 일임에도 부모 탓을 할 수밖에 없다. 또 자기가 상처받았다는 이유를 대면서 부모 말이면 무조건 거부하고 화부터 내는 건 성립이 안 된다. 아이는 모든 이유를 부모 탓이라고 투사하고 있지만 냉정히 말하면 아이가 불순종하고 화를 내며 탓만 하고 있을 뿐 자기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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