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 사치야 지음, 김활란 옮김, 행간풍경, 2006)
1. 이솝우화보다 재미있는 석가모니의 전생 이야기
원숭이의 궁리
동양인은 상사가 애매한 명령을 내리고 일이 실패로 돌아갔을 경우 그 책임을 모두 부하직원에게 돌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서구에서는 정반대다. 애매한 명령을 내릴 경우, 그 실패의 책임은 모두 지시를 내린 사람에게 돌아간다. 부하직원에게는 책임이 없다. 이 이야기는 모호하고 애매한 명령밖에 내리지 못하는 정원사, 즉 우리를 꾸짖고 있다.
금빛 날개를 가진 백조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말라!
산불, 끌까? 피할까?
만일 당신이 작은 새라면 안전한 장소로 대피한 동물들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만일 당신이 사자라면 소용없는 노력을 계속하는 작은 새를 바보 같은 녀석이라고 비웃어도 안 된다. 작은 새는 다른 동물들을, 다른 동물들은 작은 새를 이해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그것이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이다.
미완성의 여유
"아까워라. 3점을 놓치다니...." 고작 3점 정도는 괜찮지 않은가? 아이는 97저미나 받았기 때문에 분명히 부모님이 기뻐하며 칭찬해 줄 거라고 잔뜩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기대감도 '아까워라'라는 단 한 마디에 사라지고 만다. 아이는 가끔 그런 부모에게 증오감을 느끼기도 한다.
상사와 부하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주 사소한 실수를 지적하며 이러쿵저러쿵 부하에게 잔소리를 늘어 놓는 상사가 있다. 그런 상사는 부하에게 미움을 받는다. 그래서 나는 이런 메세지를 전하고 싶다. '완벽을 추구하지 말라!' 무슨 일이든지 완벽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완벽을 추구하면 오히려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만다.
갯가재와 원숭이와 코끼리의 서열다툼
타인의 일은 간단해 보이고, 하찮게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타인을 존경해야 한다. 가족끼리 동료끼리 서로 존경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승냥이를 믿은 쥐
나는 솔직히 말해서 규칙으로 학생들을 다스리는 것은 단지 아이들을 괴롭히는 일일 뿐, 진정으로 학생들을 생각한 처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정말로 가르쳐야 할 것은 자율 정신이다. 스스로 자신을 제어할 수 있는 학생을 만드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다. 외부에서 강압으로 작용하는 규칙은 학생들에게 방해가 될 뿐이다. 규칙에 얽매인 생활을 하는 것은 노예나 죄인이다.
도시락을 깜박한 스님
불교에서 말하는 시주는 상대에게 베푸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받는 것이다. 즉 시주는 베풀어준 쪽에서 고마움을 표하고, 받는 자는 고마움을 표할 필요가 없다. 지금까지 스님이 시주를 행했다면 스님은 매일 원숭이에게 고마움을 표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절대로 도시락을 잊을 수가 없다. 도시락을 잊고서는 시주행을 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스님이 된 도둑
나는 불교란 '부처님을 흉내내며 살기 위한 가르침'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우리는 완전한 의미에서는 인생을 사는 동안 결코 부처님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부처님 흉내내며 부처님답게 살아갈 수는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부처님 흉내를 내다 보면 언젠가는 부처님다워 진다고 나는 믿는다.
누명을 쓴 들개들
우리는 아주 사소한 일로 타인을 미워할 때가 있다. 타인의 행동 하나가 원인이 되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나쁘게 생각하기 쉬운데, 이는 왕이 저지른 과오와 같다. 그 행동 하나 또는 몇 가지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2. 불교의 눈으로 바라 보는 세상살이 이야기
코를 잃은 미녀
우리는 결코 타인이 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을 부러워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나는 나의 이런 저런 점이 좋다.'라고 생각하는 편이 낫다. 생각을 달리하면 현재의 자신에게 불만이 없어질 것이다.
부분적인 결점은 수정하기 힘들다고 생각하라. 부분적인 결점만 고친다는 것은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인 인간에게 불가능한 일이다. 설령 바꾼다고 해도 또 다른 결점이 생긴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한계며 이 세상의 진실이다. 그렇다면 적극적으로 포기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불교는 바로 그 적극적인 '포기'를 가르치고 있다.
네 번째 부인도 사랑하자
우리는 삶의 첫째 부인과 둘째 부인인 건강과 재산을 너무 애지중지한 나머지 친구, 가족과 자신의 마음 수련에 소홀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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