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석 지음, 동서문화사, 2022)
3장 한비자, 유교와 역사를 돌아보다
1. 배우고 익혀야 하나, 익히고 배워야 하나?
석학 이장동•장하석 교수는 지금 한국은 이미 세상에 나와 있고 책에 있는 정답을 배우는 학보다 누구도 모르는 정답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실제 경험의 습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문병로 교수는 박사 학위를 받고 나서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했다. 케빈 던바 교수의 관찰에 따르면 지금은 정답을 고독한 연구로는찾아내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 애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찾는다고 했다.
한비자가 이야기한 배우지 않는 것에서 배운다는 말은 얼핏 보면 형용모순이다. 과거에는 우리가 세상의 정답을 배울 수 있었다. 지금은 그 단계를 넘어섰다. 누구도 정답을 알지 못하는 시대이다. 우리가 몸소 해 보고 익히는 과정에서 찾아내야 하는 시대다. 습은 학의 다음 단계이기도 하지만 습의 다음 단계가 또한 학의 단계이기도 하다. 배우지 않는 것에서 배운다는 형용모순에 내포된 의미가 이를 말한다고 생각된다.
2. 먼 곳에서 친구가 찾아오면 술상 차리는 사람은 기쁠까?
술상을 준비하는 여자와 소인이 겪는 어려움은 별로 생각하지 않고 술을 마시면서 담소를 즐기는 선비의 입장에서 공자가 '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를 말하지 않았나 싶다.
3.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원망하지 않는 것이 가능할까?
살아오면서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보면,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잘 알지 못할까 봐 걱정해야 한다는 공자의 말보다는 나에 대한 남의 평가에 귀 기울이면서 행동해야 한다는 한비자의 말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4.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논리대로 세상이 굴러가는 것일까?
인간 본성에 비추어 보면 ' 수신-> 제가-> 치국 -> 펑천하'의 논리보다 오히려 '펑천하-> 치국-> 제가 -> 수신'의 순서로 다스리기가 어렵다는 것을 인정한 후 사회 운영 체계를 만드는 것이 좋다는 것이 한비자의 뜻이다.
5. 부족함을 걱정 말고 불균등을 걱정해야 옳을까?
우거짓국도 없는 자가 굶는 사람에게 밥 먹으라고 한다고 해서 배고픔을 구할 수 없다. 《한비자》<팔설>
성인도 행하기 어려운 욕망 어제라는 수요 억제 정책이 아니라, 어리석은 자도 쉽게 따를 수 있는 욕망 충족이라는 공급 확대 정책을 해야 옳다고 한다.
6. 이웃은 덕에서 나올까, 곳간에서 나올까?
흉년이 든 봄에는 어린 동생에게도 밥 먹이지 않지만 풍년이 든 가을에는 모르는 사람도 나누어 먹인다. 《한비자》<오두>
'덕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으므로 덕을 쌓아 즐겁게 산행하면서 오래도록 어울리자'는 말은 먹고살 형편이 되는 친구지간에는 덕담으로 참 좋은 말이다. 그러나 먹고살기 빡빡하면 학교 동기 모임에도 잘 나오지 않는다. 덕이 있어서 이웃이 있기 이전에 곳간이 채워져야 이웃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도덕이라는 좋은 말을 지나치게 내세우면 현실이 어려운 사람을 힘들게 한다.
7. 하는 것을 잘하도록 해야 하나, 잘하는 것을 하도록 해야 하나?
좋은 말과 견고한 수레를 50리마다 두고 보통 마부가 그것을 부리고 가도록 하면 빠르게 멀리 갈 수 있어 천리길을 하루에 갈 수 있다. 《한비자》<난세>
과거 농구선수로 이름을 날렸던 서장훈 씨는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은 너무 무책임한 말이다. 즐기는 것에 방법의 차이는 있겠지만 즐겨서 뭘 이뤄낼 수 있는 것은 저는 단연코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하면서 자신은 성인이 된 후 농구를 즐기면서 한 적이 없고, 자신이 농구를 잘하게 된 것은 끊임없이 고통스러운 훈련을 견뎌낸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폴 로머 교수의 내생적 성장이론과 일본전산의 2배의 법칙•절반의 법칙에 의한 성공 사례를 보면, 거듭된 실패가 있더라도 많은 시간을 투입해서 노력하면 좋은 말과 견고한 수레를 50리마다 두어 달리는 아이디어를 찾아 낼 수 있고, 그러면 보통 사람인 우리가 말을 부리고 가더라도 왕랑의 업적
(하루에 천릿길 가는 일)만큼의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게 세상사다. 좋아 하는 일,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고 하기보다 현재 하는 일을 잘 하도록 노력하는 게 정답이라고 한 스티브 잡스, 서장훈 선수, 신희섭 박사의 말이 더 현실서 있는 이야기로 다가온다.
8. 공자는 한비자에 한참 멀었다(1)
선비가 자리를 크게 다투는 것은 인품이 낮기 때문이 아니라 이권이 중하기 때문이다. 《한비자》<오두>
요순 임금이 천자 자리를 자식에게 넘기지 않고 신하에게 넘긴 것은 그 당시 천자라고 해서 특별히 좋은 이익이 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고, 자리에 따른 이익이 크면 선비도 모두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다툰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한비자는 사람이 이래야 하고 또 이렇다는 식의 당위를 말하지 않고, 사람의 실제 행동을 보고 그 행동에서 나타난 정답을 찾아서 대처해 나가야 올바르다고 말한다.
9. 공자는 한비자에 한참 멀었다(2)
현명한 군주는 공이 없는 자에게는 상을 주지 않고 죄 없는 자에게는 벌을 가하지 않는다. 《한비자》<난일>
10. 맹자의 무항산 무항심 주장은 문제가 없는가?
맹자는 "먹고살 만한 재산(항산)이 없어도 일정한 마음(항심)을 가지는 자는 오직 선비만이 할 수 있다. 백성은 항산이 없으면 그로 인해 항심도 없다. 진실로 항심이 없으면 방탕하고 편벽되고 간사하고 사치스러운 행위를 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한다. 맹자는 오직 선비만이 항산이 없더라도 항심을 가진다고 한다.
맹자가 이야기한 선비는 도대체 어떤 사람을 두고 말하는 것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현실에서는 재물과 이익에 욕심이 없고 초연한 선비를 찾아보기 어렵다.
11. 맹자가 주장하는 성선설에 모순은 없는가?
공산주의는 성선설에 바탕을 둔다. 이것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가진다."라고 마르크스가 한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렇지만 실제 사람은 내가 아닌 남(공동체)을 위해서 행동(일)하도록 강제한다. 이렇게 강제하기 위해서 공산주의 국가는 형벌을 매우 엄하게 운영한다. 형벌이 엄하지 않으면 남(공동체)을 위한 행동(일)을 전제햐 공산주의 체제가 제대로 가능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비자는 <팔설>에서 자식과 엄마 간의 본질은 사랑이나, 신하와 군주간의 권력관계는 계책이다."라고 하여, 모자지간 외의 관계에서는 사람은 이익에 따라 행동한다는 성악설로 파악한다. 이러한 논리는 모든 부분에서 일관하는데, 이러한 한비자의 논리가 훨씬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12. 단종은 사육신을 충신으로 여겼을까?
비록 자기 몸에 상처를 내며서까지 군주를 위한다는 명성을 얻었지만 실제로 지백에게 추호도 이익이 되지 않았다. 《한비자》<간겁시신>,
한비자는 예양이 진정한 충신이라면 지백이 살아 있을 때 충언을 하여 화를 미리 방지하도록 했어야 하는데도 이를 하지 않고 주군이 죽고 나서야 복수를 한다고 자신의 목숨까지 바쳤지만 이것이 주군 자백에게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사람은 제대로 일할 수 있는 때 제대로 일해야지 나중에 몸을 상해가면서 일해 봐야 뒷북치기이어서 아무 소용없다는 주장이다.
13. 나라를 팔아먹은 자를 매국노라 부르는 게 옳은가?
매국사가 정확한 말이다.
14. 이은하의 '겨울 장미' 노래 가사는 애틋한가, 슬픈가?
모름지기 꾸밈으로 바탕을 논하게 되면 그 바탕이 쇠약해진다. 《한비자》<해로>
순자는 <해폐>에서, "천하는 두 가지가 있다. 아닌 것에서 옳음을 살피고 옳다고 하는 것에서 아님을 살펴야 한다."라고 했다. '겨울 장미' 노래의 배경을 알면 이 노래를 더 새로운 맛으로 즐길 수 있듯이 이광수가 친일파로 된 동기를 알면 우리가 다시는 일본의 지배를 받지 않을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순자가 말한 비찰시 시찰비의 뜻이 아닐까.
15.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노벨 경제학상의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은 "탐욕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누구도 탐욕스럽지 않다. 다만, 남들이 탐욕스러울 뿐이다"라고 말했다. 나 스스로는 실제 탐욕스러우면서도 탐욕스럽지 않은 체하고 남들은 탐욕스러움에 가득 차 있다고 여긴다는 말이다. 내로남불의 우리의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다.
황금 보기를 돌같이 여기지 않고 황금으로 여긴 신사임당과 이황을 우리는 지폐의 인물로 삼고 있다. 노비를 양반의 큰 재산이 되도록 한 세종대왕과 양반의 재산인 사노비는 그대로 인정하고 관청의 공노비만 조금 개선하자고 한 이율곡도 지폐의 인물로 하고 있다. 그런데도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최영 장군의 말을 삶의 진리를 가리키는 말로 교육하고 있고, 우리도 진리로 알고 있다. 황금은 황금으로 여기는 것이 진리이다. 황금을 황금으로 생각하고 행동한 신사임당, 이율곡, 이황, 세종대왕이 올바르다.
16. 동학농민운동 때 청나라를 부른 고종이 문제? 신하가 문제?
춘추오패가 천하에 공과 이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군주와 신하가 함께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비자》<난이>
17. 토사구팽은 꼭 나쁜 것일까?
신하와 군주는 서로 이해가 다르다는 것을 아는 자는 왕이 된다. 《한비자》<팔경>
신하와 군주는 서로 이해가 다르다는 것을 아는 자는 왕이 되고, 같다고 여기는 자는 겁박을 당하며, 일을 함께 하는 자는 살해당한다."라고 말한다.
회사에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창업 공신이라는 이유로 계속 대우를 받으려는 사람이 있다면, 오너 입장에서는 토사구팽하는 것이 필요한 경영 테크닉이라고 볼 수 있다.
18. K-문화의 싹은 일제 때 어떠했을까?
19. 조선은 왜 전쟁 한 번 안하고 일본에 나라를 넘겨주었을까?
능히 백성의 힘을 하나로 모아 다했지만 나라가 깨지고 군주 자신이 살해당하는 경우는 모두가 현명한 군주다. 《한비자》<설의>
한비자는 <설의>에서 "능히 백성의 힘을 하나로 모아 다 했지만 나라가 깨지고 군주 자신이 살해당하는 경우는 모두가 현명한 군주다. 반대로 만약 법이 뒤집히고 자리가 바뀌며 백성이 상하지 않고 온전하게 하여 나라를 넘겨주는 것이 최고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라고 했다.
조선 왕실이 전쟁 한 번 해보지 못하고 그대로 나라를 넘겨준 이유는백성의 삶이 참혹하기 이를 데가 없는 사회이어서 백성들의 뜻을 한 곳에 모아서 전쟁할 상황이 되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런 참혹한 역사도 우리가 제대로 알아야만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20. 감상적으로 과거 시험 출제한 광해군, 어떻게 봐야 하나?
학문을 그만두게 하고 법도를 밝혀서 개인적인 편익을 눌러 하나의 공이라도 세우게 하는 것이 공적인 이익이다. 《한비자》<팔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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